벨기에는 본래 네덜란드의 남부 지역이었으나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8~1648년) 이후 북부와 분열되면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793년 프랑스는 벨기에를 합병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벨기에는 북부의 네덜란드 연합 왕국과 합쳐지게 되었으나 절대주의적 통치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신앙적인 차이로 인해 왈롱인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유럽 체제를 재편성하기 위해 열린 빈 회의를 통하여 유럽 각국들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7]을 하나로 통합하여 네덜란드 연합 왕국을 세우고 오라녜나사우 가문을 왕좌에 추대하기로 합의한다.
개신교가 우세하며 오랜 독립의 역사를 지닌 네덜란드 지역과 카톨릭 성향이고 독립의 역사가 없었던 벨기에 지역을 하나로 합치는 것과 관련하여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폴레옹이라는 희대의 굇수에게 질릴대로 질려있었던 동맹국들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통합을 밀어붙인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수는 오래지 않아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네덜란드 연합 왕국의 인구에서 절반 이상이 벨기에에 거주했음에도 벨기에는 모든 면에서 네덜란드에게 불이익을 받아야했다.
인구비례는 온데간데 없이 의회의 의석 수는 남부와 북부가 50대50으로 동률이었고 그나마도 동률을 지키지 않은 채 기득권을 쥔 북부 출신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했으며 이제 막 싹을 트기 시작했던 산업혁명은 주로 네덜란드 지방에 집중됐다. 여기에 네덜란드가 공업 성장을 장려하기 위해 관세를 낮춰버림에 따라 농업이 주력이었던 남부 벨기에 지역은 값싼 곡물이 대거 수입되면서 강한 타격을 입는다.
안 그래도 타오르는 불길에 제대로 기름을 끼얹은 것은 국왕 빌럼 1세의 언동이었다. 북부 출신이었던 빌럼 1세는 벨기에 지역의 자치 요구를 무시했고, 여기에 한 술 더떠서 1823년에는 연합왕국의 공식 언어로 네덜란드어만을 지정한다.
이 당시 벨기에를 좌우하는 상/중류층의 언어는 프랑스어였기에 이러한 언어 정책에 격렬히 반발했고[9] 결국 빌럼 1세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여 네덜란드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는 정책을 폐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가톨릭 전통이 깊었던 남부 지역에서[10] 빌럼 1세가 반노골적으로 칼뱅파 개신교를 싸고 돈 것이 커져가는 벨기에인들의 분노를 터뜨리는 데 결정타를 날렸다.
1830년 바로 옆나라였던 프랑스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벨기에인들은 크게 고무된다. 이 혁명에 자극받은 왈롱인들이 8월 5일경 혁명을 일으켰다. 이를 벨기에 사람들은 벨기에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 날을 독립 기념일로 여긴다. 네덜란드가 편성한 진압군은 벨기에군을 간단히 격파하였으나 벨기에를 병합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던 프랑스의 무력 및 외교적 압력으로 인해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1831년 휴전을 맺고 1839년에는 런던조약에 서명하여 벨기에의 독립을 승인하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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