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주민족인 타이족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황하 상류지역에 살던 몽골로이드 계통으로 보고 있다.[3] 그 외에도 설이 많지만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중국 윈난에서 동남아시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10세기경부터 이주의 흔적이 나타나나, 본격적인 이주는 13세기 대리가 원나라에 멸망한 이후였다.
윈난성지역에 남아 거주하던 타이족들은 대리국의 지배를 받으며 십송빤나와 쳉훙(중국지명으로는 징훙)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대리국이 12세기 초 귀족과 왕족간의 다툼이 생긴 틈을 타 파야 쯔앙이 왕을 칭하면서 징훙을 수도로 한 쳉훙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중국에 남지않고 윈난성과 광시성을 통해 메콩강을 타고 대대적으로 남하한 타이족 일파는 9세기경 태국 북부 고산지역에 도착하여 그곳에 거주하던 와족 들을 몰아내고 시하나바티왕이 나타나 치앙라이 인근 현재의 치앙센 지역에 도시국가를 건설한다. 900년 하리푼자야 왕국의 몬족이 침공하여 한동안 멸망하였으나 937년 다시 타이족은 반격을 하여 몬족을 몰아내고 치앙센을 되찾는다.
이후 1000년경 대지진이 발생하여 치앙센 도시문명은 개박살이 나버린다. 심지어 이곳의 선주민이었던 와족이 라바차카랏이라는 왕을 중심으로 다시 남하하여 치앙센지역의 지배민족이었던 타이족을 몰아내고 와족들이 지배민족으로 다시 등장하였다.
1100년경 치앙센지역에 와족들 마저 재등장하자 이 지역의 인구가 터져 넘치게되고 타이족은 인근의 치앙마이나 치앙라이지역에 란나왕국을, 또 다른 일파는 더 남하하여 지금의 수코타이 지역 짜오프라야강 유역에 포쿤왕국을 건설한다. 이나라가 바로 후술할 수코타이왕국의 전신이 되는 나라이다.
비슷한시기 치앙라이와 라오스 사이에 파야오 라는 작은 도시국가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곧이어 란나왕국에게 흡수되었다.
현재의 왕조는 시암을 세운 딱신 대왕이 말년에 정신병에 걸려 부처로 자칭하고 포악한 정치를 펼쳐 강제로 구금되어 짜끄리에게 살해당했다. 딱신 왕은 버마의 공격에서 국민들을 지키려고 희생하던 자이며 태국인이 아닌 신분이 낮은 중국계 부모를 둔 짜끄리는 항상 차별의 대상이였고 전쟁 등 혼란 속에서 신뢰를 얻은 짜끄리는 항상 탁신 왕에 배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튼 짜끄리가 탁신 왕을 살해하고 시작된 왕조가 짜끄리 왕조이다.
짜끄리 장군은 라마 1세로 즉위했으며 적극적인 영토 확장 정책을 펼쳤다. 이 때의 영역은 그 이전 최대규모였던 나레쑤언 시기의 영토확장을 능가하는 것으로써, 명실상부한 동남아의 패자의 위치를 재구축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손자인 라마 3세의 사망 무렵 시암의 영토는 역대 최대를 자랑하게 되었다.
라마 5세 시대에 이르면 제국주의의 물결이 동남아를 휩쓸게 되었다. 라마 5세는 서구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개혁을 행했다. 또한 서쪽의 영국(영국령 인도 제국)과 동쪽의 프랑스(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외교술(대나무 외교)을 행해, 그 과정에서 상당한 영토를 열강에 넘겨주는 대신 시암의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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