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아디게야 공화국(체르케스인)

frog.ko 2020. 12. 19. 18:28

러시아 남부에 있는 자치공화국으로 크라스노다르 주에 둘러싸여 있다. 수도는 마이코프이다. 체르케스인은 북캅카스 일대의 원주민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쓰는 분류에 의하면 아디게인이라고 하면 아디게야 일대의 체르케스인 만을 가리키고, 반대로 체르케스인이라고 하면 카라차이-체르케시야 지역의 체르케스 인을 가리킨다.

 

북서캅카스어족(압하스-체르케스 압하스-아디게-압하스아바자어파-체르케스어파-우비흐어파

그보다 동쪽의 카바르디노-발카리야 지역의 체르케스인은 카바르다인, 그리고 흑해 연안 지역의 체르케스 인은 샵수그 인으로 나눠서 구분하고 있다. 현재의 소치 일대에 거주하던 우비흐인도 체르케스 인에 포함되었지만, 이들은 현재 캅카스에선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아디게인은 아디게야 공화국의 주민이며, 아디게야 공화국에서 가장 많은 민족이다. 넓은 의미로는 체르케스인을 아디게인이라고 일컫는다.

 

대략 카프카스 북서부에 해당하는 체르케스 지역은 전략적인 요충지에 공통적인 특이한 평판을 받아왔다. 체르케스인의 초기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스 식민지가 체르케스 본토에 건설된 적은 없지만, 그리스인들이 흑해의 체르케스 연안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무역을 했기 때문에 그 영향은 뚜렷이 남아 있다.

 

체르케스인은 로마인·카자르족·몽골족·크림타타르족·투르크족·러시아인 등으로부터 계속적인 영향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19세기 역사가들은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 호전성, 용맹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12, 13세기 조지아의 군주들에 의해 일개 지방으로 복속되기 전까지는 자치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1234년 카프카스 지역은 몽골족의 지배를 받았고, 그후 타타르족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까지 여러 번 카프카스의 지배자들은 페르시아와 투르크족의 칩입에 직면하여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표트르 대제가 등장할 때까지 그 지역을 지배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1785년 북부 카프카스 지역은 러시아의 한 지방으로 복속되었다. 러시아·페르시아·투르크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영토 전쟁 때 카프카스 지역은 뜨거운 각축장이 되었다. 체르케스인은 러시아의 지배에 대해 용감하고 끈질기게 저항했으나, 1864년 결국 패배하여 인구의 대부분인 약 40만 명이 굴종하며 사는 것보다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쪽을 택했다.

 

체르케스인의 두 주요집단 중 아디게이족(下체르케스인)은 대부분 러시아 연방 내 아디게이 자치공화국과 카라차이체르케시야 자치공화국에 살고 있으며, 현재 인구는 약 16만 5,000명이다. 카바르디아족(上체르케스인)은 대부분 러시아 연방 내 카바르디노발카리야 공화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34만 5,000명이다. 아나톨리아 지방(15만 명), 시리아(3만 5,000명)에도 체르케스인이 살고 있으며, 요르단·이라크·이란에도 작은 집단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체르케스인은 카프카스 북쪽 평원에 살고 나머지는 산록지대에 살며, 아주 극소수가 고지대나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 전통적으로 경제는 주로 목축·농경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부수적으로 과일을 재배한다. 전통사회구조에서는 왕족과 귀족이 가축과 토지를 지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잡한 계급체계 안에 편재되어 있었다. 체르케스인 소녀와 처녀들은 투르크족 상인에 의해 동방 왕족의 후궁으로 팔려갔다. 노예제도가 최근까지 지속되었고 여성들의 지위는 낮다.

 

공식적으로 이들은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다. 그러나 천둥 숭배, 풍요신과 신성한 숲의 숭배와 관련된 고대의 의식이 현재에도 전해지고 있다.

아디게 인=아디게야 일대의 체르케스 인
체르케스 인=카라차이-체르케시야 지역의 체르케스 인
동쪽의 카바르디노-발카리야 지역의 체르케스 인=카바르다 인
흑해 연안 지역의 체르케스 인은 샵수그 인
소치 일대에 거주하던 우비흐인은 체르케스 인에 포함(캅카스에선 거의 사라짐)

코카서스 어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