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자치주 는 러시아의 극동에 위치한 자치주이다. 이 지역은 "예브레이" 또는 "비로비잔"이라는 이름으로도 지칭된다. 유대인을 위해 설치한 자치주이나, 현재는 대부분의 주민이 러시아인이며 그 다음으로 우크라이나인이 많다. 면적은 36,266km²이며, 대만이나 경상도와 비슷한 크기이다. 또한 이스라엘보다는 넓다.
원래 말갈족이 살던 땅이었고 19세기까지 청나라의 영토였다가 1858년 아이훈 조약을 통하여 러시아 제국령 아무르주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다 소련 시절 시오니즘 정착민 운동을 보고 자극받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에 대한 대립항으로 유대인 무산계급의 터전을 만들자며 유대인들을 여기로 이주시키고 1934년에 유대인 자치주를 설립하였다. 당시는 중동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의 국가가 건국되기 전, 즉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땅이 없는 떠돌이 민족이었다.
유대인 자치구역 계획 자체는 1920년대 초반부터 구상되었고, 처음에는 입지조건과 기후가 괜찮은 크림반도 일대에 유대인 자치주를 세운다는 계획이었지만, 크림반도가 크림타타르인들이나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던 땅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무리수였고 결국 백지화 되었다. 그러다가 인구밀도가 희박한 이곳이 유대인 자치주로 선정되었다. 이곳으로 이주할 유대인은 자원을 받았고, 심지어 유대인 마을 상공에서 삐라를 뿌려 '유대인 자치주로 이주하자'라고 홍보도 했다.
1928년에 첫 유대인 이주자가 도착했다. 주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쪽의 유대인들이 왔으며 소련 밖에서도 이곳에 정착하는 유대인이 생겼다. 유대인 자치주가 타 시베리아 지역보다는 낫다고 해도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 서러시아에 비하면 인프라가 뒤떨어졌고, 겨울철 추위도 매서웠던지라 처음에 유대인들이 개간 작업 및 겨울철 날씨 적응 문제 등으로 고생을 해야했다. 그나마 당시 이곳에 터잡고있던 고려인들이 도와주어서 겨우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소전쟁 시기에는 전장이 된 소련 서부지역과는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3국, 서 러시아 일대의 유대인들이 독일군에 의해 끌려나와 학살당하고 수용소에서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다가 죽어나간것과는 다르게 유대인 자치주의 유대인은 새옹지마 격으로 안전과 재산을 지킬수있었다.
1948년 유대인 인구는 절정에 달해 자치주 인구의 4분의 1인 3만여 명에 달했다. 인프라가 열악해서 유대인들이 생각보다 많이 이주해오지 않았고 스탈린도 막상 유대인 자치주가 설립된 이후로는 유대인 자치주 개발 문제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고 냅두었다. 중심부 일대를 제외하면 인프라가 열악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스탈린이 죽자마자 이스라엘 등지로 떠나기 시작해 1959년엔 이미 절반으로 줄었고, 2010년 유대인 인구는 1,628명으로 0.9%선까지 떨어졌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는 유대인들의 땅이 따로 없었으니 이주해 볼 만 했을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에는 굳이 여기로 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흐루쇼프 때에는 유대인 인구의 감소를 막고 우즈베크와 카자흐 일대에 살던 부하라 유대인들을 유대인 자치주로 강제이주시켜서 유대인 자치주를 발전시킨다는 계획도 있지만 이미 강제이주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 되어버린 시대인 만큼 중간에 뒤엎어졌고, 이후로도 유대인 인구의 감소는 지속되었다.
현재 유대인 자치주는 유대인이 전체 인구의 1% 남짓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존재 이유가 없다. 이곳은 러시아 유일의 자치주인데,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성립되던 시기부터 유대인 자치주 폐지론이 나오기도 했으며, 90년대 말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당시 러시아 총리가 유대인 자치주 폐지론을 꺼냈다가 유대인 자치주 주민들의 반발로 이를 철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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