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은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무굴 제국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총애하였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하여 1632년에 무덤 건축을 명하여 2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를 동원하여 건설했다.
타지마할은 총 17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무덤군의 중심 부분이며, 실제로 무덤군은 응접실, 모스크 등이 따로 딸려있다. 영묘의 건설은 거의 대부분 1643년에 완료되었으나, 추가적인 보조 작업이 약 10년 동안 진행되어 1653년에야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타지마할을 건설하는 데에는 당시 가치로 3천 2백만 루피아, 현재의 가치로는 8억 2천 7백만 달러가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지마할 건설 당시, 황제 직속 건축가인 우스타드 아흐메드 라하우리의 감독 아래 20,000여 명에 달하는 예술가들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제국의 수도 아그라에 타지마할이 축조된 22년 동안, 페르시아, 이탈리아, 프랑스등에서 기술자와 장인들을 초빙했고, 이웃한 미얀마는 물론이고 멀리 중국과 오스만 제국, 이집트에서까지 온갖 건축자재가 수송되었다. 제국의 재정 상태가 휘청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이 건물은 실용성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예술 건축물이었다. 당시로서는 생산성이 전혀 없는 건물을 위해 제국의 국력이 소진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백성들은 이거 짓고 유지비 댄다고 죽어났다. 신하들도 보다못해 반대했지만 샤 자한은 그런 신하들을 힘으로 억눌러버리고 강행했다.
만약 그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일찍 사망했다면 중도에 폐건물 꼴로 남아버렸을 가능성도 높지만, 다행이랄지 어떨지 그는 22년의 준공기간 내내 재위했음은 물론이고 완공된 1648년에서 10년이나 더 오래 재위한 장수 군주였다. 아마 폐위되지 않았으면 더더욱 오래 재위했겠지만, 아들 아우랑제브가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려 아그라 요새 탑에 가두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타지마할의 무리한 축조 탓에 세금을 각출당한 시민의 불만도 굉장했던 터이니 자업자득적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특히 샤 자한은 정사에도 무관심한 암군이 되었던 터라 폐위당했을때 무굴 제국에서는 폐위에 불만을 품은 반란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우랑제브 뿐만 아니라 다른 자식들도 암군이 된 아버지에게 진절머리가 난 터라 굳이 아우랑제브가 아니더라도 다른 자식들에게 폐위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탑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신의 위대한 건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1666년 겨울까지 갇혀있다 죽었다.
아우랑제브는 죽은 아버지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뤄주지 않았지만, 샤 자한의 유해는 뭄타즈 마할과 마찬가지로 타지마할에 공동 안장했다.
일반적으로 흰색 대리석 돔의 영묘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타지마할의 규모는 더 크다. 네 귀퉁이의 높이 40미터의 미나레트는 수직으로 보이나 붕괴가 발생했을 때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세하게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