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 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존속한 힌두교/불교 제국이다. 크메르 제국은 푸놈 왕국이나 첸라 왕국 등을 흡수하면서 힘을 키워나갔으며, 국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에는 동남아시아 반도 대부분을 직접적으로 지배하거나 봉신국으로 거느렸으며, 전성기 시절의 영토는 북쪽으로는 중국의 윈난성, 서쪽으로는 베트남, 남쪽으로는 미얀마까지 닿았다.
크메르 제국의 시초는 진랍 왕국으로, 본래 부남의 속국이었으나 550년에 부남으로부터 독립하여 역으로 부남을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자야바르만 1세가 죽고 난 뒤 후계자가 없자 706년 수진랍과 육진랍으로 분열되었다.
크메르 제국의 창건자인 자야바르만 2세는 본디 첸라 왕국 출신이다. 그러나 첸라 왕국의 국왕이었던 라젠드라바르만 1세가 자바 섬의 사일렌드라 왕국의 국왕을 모욕하면서 첸라 왕국과 자바 섬 사이에 전쟁이 터졌고, 이 전쟁에서 첸라가 패배하면서 자야바르만 2세도 이때 포로로 자바 섬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자야바르만 2세는 자바 섬에서 공주와 결혼하고 왕실의 신임을 얻어 다시 첸라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이후 급격히 영향력을 키워나가며 경쟁자들을 제거해나가기 시작하였다. 790년에는 왕국을 세워 그 국명을 크메르어로 ‘캄부자’라고 하였으며, 톤레삽 호수 북부 내륙 지대에 자리한 마헨드라파르바타로 수도를 옮겼다.
790년, 자바에 볼모로 잡혀있던 자야바르만 2세는 자바의 공주와 결혼하고 자바 왕실의 신임을 얻어 수진랍으로 돌아와 자바의 대리인이 된다. 이후 세력을 키워 분열되었던 영토를 통합하고 802년 프놈쿨렌에서 자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자신을 '군주들을 지배하는 유일한 절대자'라는 의미의 데바라자, 신왕(神王)으로 선포하며 앙코르 왕국을 세웠다. 자야바르만 2세는 영토를 확장하고 신왕 사상을 창시하여 왕권을 강화하는 등 앙코르 왕국의 기틀을 다졌다.
앙코르 왕국은 12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수리야바르만 2세 때 앙코르 와트가 세워졌고 수리야바르만 2세 사후 참파의 지배를 잠깐 받긴 했지만 자야바르만 7세가 참파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나라를 크게 발전시켰으며 미얀마,라오스,타이의 일부를 차지하였다. 바이욘과 앙코르 톰도 이때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에 의하면 왕이 행차할 때면 가마가 수백개가 넘었고 해가리개는 수풀처럼 무성했으며 코끼리는 온통 황금과 보석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앙코르 왕국은 무리한 원정과 사원건설로 13세기 이후 급격히 쇠퇴하였고 주변국들로부터 영토를 점차 상실하다가 급기야 1431년에 태국에게 수도를 빼앗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크메르 제국 최고의 유산은 현재 캄보디아에 소재한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 유적으로, 앙코르 와트나 바이욘 사원 등 웅장한 불교 사원들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이를 통하여 당대 크메르 제국의 경제력과 예술력, 부 등을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앙코르 지역을 위성 사진으로 탐색하여 연구해 본 결과, 앙코르는 11세기와 13세기 사이에 그 번성의 절정기를 누렸으며,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다고 전한다.
크메르 제국은 802년에 자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를 차크라바르틴, 즉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칭하면서 건국된 것으로 여겨지며, 15세기에 앙코르가 함락되면서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존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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