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프가는 1613년부터 1917년까지 304년 동안 러시아 제국을 통치한 왕조이다. 미하일 1세부터 니콜라이 2세까지 이어졌다.
시조는 러시아계가 아닌 독일의 올덴부르크 지방의 귀족,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코빌라로 14세기 무렵, 현재의 프로이센 지역에 위치한 튜튼 기사단국에서 러시아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대내적인 전제 정치와 대외적인 팽창 정책을 통해 강력한 전제 군주로 군림했던 이반 4세가 죽자 그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귀족들 간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다.(동란 시대) 한동안 혼란이 거듭되다가 1613년 러시아 전국회의에서는 이반 4세의 아내 아나스타샤의 가문인 미하일 로마노비치를 새 황제로 선출하였는데, 이것이 로마노프 왕조의 시작이다.
이반 4세가 초안을 잡은 대내외 정책을 이어받음과 더불어 폴란드와 스웨덴이 쇠퇴한 틈을 타서 명실상부한 근대국가로서의 러시아를 창건한 미하일 로마노비치의 정책 이후 이 로마노프 왕조는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러시아를 통치하게 되었다.
로마노프 정통 왕조의 남계는 표트르 2세가 사망하면서, 단절되었다. 후에 홀슈타인고트로프 가문의 카를이 표트르 3세가 되자, 홀슈타인고트로프로마노프 왕조가 된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인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며 제위를 잃은 로마노프 왕조는 이후 볼셰비키에 의해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이 전부 살해당하여 직계가 단절되었다.
니콜라이 2세는 로마노프 왕조의 14번째 군주로 1917년 2월 혁명으로 퇴위했으며, 니콜라이 2세 가족은 사회주의 혁명 이듬해인 1918년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시로 우랄산맥 인근 도시 예카테린부르크로 유배됐다. 황제와 황후, 4명의 딸과 13살 난 아들 등 황제 일가 7명과 주치의, 시종 등 모두 11명이 현지의 한 건축가 저택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시베리아를 장악한 반혁명군(백군)이 예카테린부르크를 압박해 들어오자 당황한 혁명군(적군)은 그해 7월 저택 지하실에서 황제 일가와 시종들을 한꺼번에 총살했다.
이들의 시신은 전원 불태워져 소각되었고, 소각된 시신들은 1991년에 들어서야 발굴되었다. 이때 적군은 니콜라이 일가족들을 서둘러 처형했는데 니콜라이 황제의 지지세력인 백군(白軍)이 그들을 구출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