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은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유다교를 신봉하는 사람, 민족적인 의미에서는 혈연 또는 개종을 통해 고대 히브리 민족의 후예가 된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
고대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의 후예로 가나안 땅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고대 히브리 왕국을 세웠다. 2대 다윗왕은 예루살렘을 정복, 왕국의 수도로 삼았으며 사울왕가와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이스라엘의 패권을쥐었다.그의 아들 3대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유다교 성전을 건축했다.
하지만 솔로몬 사후에 가혹한 부역활동에 대한 반항으로 반란이 일어나, 북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의 유대 왕국으로 분열되어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의 살마네세르 5세에게 멸망하고 남유대는 기원전 6세기 신(新) 바빌로니아에 멸망하였다.유대의 엘리트는 바빌론으로 끌려가나 (바빌론 유수), 이후 바빌로니아가 벨사살을 암살한 다리우스가 세운 페르시아에 망한 뒤 그중 일부가 유대 땅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인의 명목을 이었다.
그후 B.C 63년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대다수 노예로 팔리거나 로마의 시민으로 동화되었다. 로마 시대의 유대인들 상당수는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와 소아시아 등지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로 추정된다.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살았으며 이슬람교가 성장하면서는 일부가 인도와 중국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유대인 중 일부는 지중해 연안 외의 지역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의 후손인데 카자르인,이두매니아인,이디오피아인, 아랍인 등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유럽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수난을 면치 못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고,직업선택과 거주지에 대한 제한을 두었다. 일반직업에 종사할 수 없게된 유대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인정하지 않던 직업인 금융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적지 않은 유태민족 전문가들은 아쉬카나지가 가나안 출신의 셈족이 아니고, 종교만 유태교를 선택한 터키계 백인 카자르족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미국과 서유럽의 유태인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대답하기를 피한다. 그들의 고민은, 만약 자신들이 카자르족의 후손임을 자인한다면, 셈족에 바탕을 둔 유태인의 정통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셈족 유태인은 아랍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머기가 검고 눈도 밤색인가 하면, 코카서스계 인종 중 흔히 볼 수 있는 금발이나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나 서유럽 등에서 만나는 아쉬카나지 가운데는
외관상 일반 백인과 전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백인에 가까운 유태인이 많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미국의 아쉬케나지는 유태인을 정의할때 인종적이 면보다 종교적인 면을 더욱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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