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하라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서해안의 위치한 지역. 모로코와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사이의 영토 분쟁 중이다. 지명 그대로 사하라의 서쪽에 위치해있다. 매우 덥고 건조한 지역이며, 중심 도시는 엘아이운. 인구는 약 40만 명인데 대략적인 추정치이다.
이중 모로코 정부에 대항하는 사흐라위(sahrawi)족이 약 25만 명으로 추산된다.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은 곳이며 카나리아 제도와 연계하여 모로코도 전부 식민지화하려고 했으나 프랑스의 개입으로 불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졌다.
대항해시대를 거쳐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를 분할하여 각국의 식민지로 삼았다. 1884년 스페인은 베를린 회담을 통해 서사하라를 할양받았다. 이후 서사하라는 스페인령 사하라라는 이름으로 통치되었다.
스페인령 사하라의 원주민인 사흐라위인은 독립을 요구했으나, 스페인의 식민지이기 이전에 일부 지역이 모로코와 모리타니 영토였기 때문에 모로코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스페인령 사하라 이양을 요구했다. 이때 인근의 모리타니도 스페인령 사하라에 대한 영유권을 요구했다.
결국 1975년 11월 6일 스페인이 서사하라를 포기하고 스페인령 사하라가 종식되었다. 모로코 정부는 즉각 녹색행군을 전개하여 서사하라 북부를 장악하였다. 1976년 2월 스페인은 모로코, 모리타니에게 서사하라를 대략 북위 24도선을 기준으로 2:1로 분할하여 양도한다는 마드리드 협정을 맺게 된다.
한편 스페인의 통치에 맞서 사흐와리인은 1973년 5월 10일 폴리사리오 전선을 모리타니 수도 누악쇼트에서 결성하였다. 이들은 스페인 당국에 대항하여 독립 투쟁을 전개했으며 1976년 서사하라가 모로코와 모리타니에게 분할되자 이에 반발하여 동년 2월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이에 모로코는 폴리사리오 전선을 공격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고 폴리사리오 역시 게릴라 투쟁으로 모로코군과 맞서 싸웠다. 이 분쟁을 '서사하라 분쟁'이라 부른다.
모리타니는 1979년 폴리사리오와 협정을 맺고 영유권을 포기하였으며 1988년에 모로코와 폴리사리오가 유엔 평화안을 수용하고 1991년에 유엔 사하라 주민투표 감시단이 파견되었다.
현재 폴리사리오측은 서사하라지역의 약 10% 가량을 점유한 상태이며 모로코는 이 지역의 인광석을 노렸다는 후문이 있다.
수도는 엘아윤에 있으며, 알제리에 망명 정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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