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대전의 한중간 연합군 진영으로서 독일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던 제정 러시아에, 돌연 혁명이 일어나 로마노프 왕조는 붕괴해 버렸다. 1917년 2월의 일이다.
이윽고, 정권을 잡은 소비에트 정부는 독일과 휴전협정을 체결해 버린다. 그리고, 대신에 러시아 국내에서 제정 러시아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백군(白軍)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백군은 제정 러시아의 코르차크 제독에 이끌려 동쪽 우랄의 옴스크라는 도시를 거점으로, 혁명정부군인 적군과 격렬하게 싸웠으나 1919년 11월에 마침내 패배해 버렸다.
거기서 재기를 도모하기 위해서 동쪽으로 피하게 되었다. 가야할 곳은 적군의 추격대가 손닿지않는 시베리아의 두메 산골이었다.패퇴하는 백군은 거의 50만명을 헤아렸고 거기에 제정러시아 시대의 귀족, 승려등의 망명자 75만명이 더해졌다.그 중 약 25만명 이상은 여자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제정러시아를 부활시키기 위한 군자금 약 500톤의 로마노프 금화와 재보를 가지고 가고 있었다. 군·민 합해 125만명의 대행렬은 적군이 바로 따라 잡을 수 없게끔 죽음의 강행군을 개시했다.
그러나, 목적지로 삼은 태평양기슭에 도달하려면 8000킬로나 되는 광대한 시베리아를 횡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거기에다가 기온은 급격하게 떨어져 공포스런 동장군이 덮쳐오고 있었다. 행군 개시부터 동사자가 끊임없이 생겨났다.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은 그대로 버림받고 눈얼음속에 버려졌다.
매일 매일 얼어서 죽은 사람의 시해들이 열을 늘이고 갔다. 20만의 인간이 하룻밤에 동사한 날조차 있었다. 그런데도 죽음의 행진은 쉬는 일 없이 계속되었다. 3개월이 경과했다. 최초 125만 있던 사람들은 25만명정도로 줄어 들어 버리고 있었다.연료도 바닥을 드러내고 운반을 위한 말도지독한 추위에 죄다 죽어 버렸다.마침내, 500톤의 금괴도 처분해 버려야 할 때가 왔다.그런데도,남은 25만의 사람들은 앞으로 2000킬로 떨어진 이르쿠츠크까지 가까스로 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는 얼어붙은 거대한 바이칼호가 가로막고 있었다.결빙된 호면은 유리 같이반짝반짝 빛나고 두께는 3미터 정도 되었다. 건너편 호안까지는 80킬로 정도로 생각되었다.사람들은 한번 더 마지막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바이칼호를 횡단하게 되었다.25만명의 인간의 집단이 더듬 더듬 건너기 시작했다.
그 때, 머리가 뻐지직하고 쪼개질 것같은 지독한 한파가 그들에게 덮쳐왔다. 금새 비바람 눈보라로 바이칼호 얼음판 위는 극한의 맹추위가 엄습했다.그 추위는, 영하 70도에까지 내려가고, 이미아무리 두꺼운 모피옷을 겹겹이 껴입었어도 그 냉기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호면의 반가까이도 가기 전에 몇천명의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차례차례 동사해 동사해 갔다.이윽고, 머리가돌아 버릴 것 같은 추위속에서, 25만명의 인간이 차례차례 겹쳐지듯이 얼어서 넘어져 갔다.
움직이던 모든 것이 얼어붙어 이미 호면 위에 살아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동사한 25만의 시체는 수개월이 지나도 그대로의 상태로 거기에 남아 있었다.이윽고, 봄이 오고 얼음이 풀리는 계절이 되었다. 바이칼호의 얼음도 녹아내렸다.그렇게 해서, 군인이나 여성, 아이를 포함한 25만의 동사한 시체는 천천히 바이칼호 물밑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가라앉아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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