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올은 본래 유럽인의 자손으로 식민지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을 부르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
는 보통 유럽계와 현지인의 혼혈을 부르는 말로 쓰인다. 베네수엘라 독립운동의 지도자 시몬 볼
리바르는 스페인계 크리올이었다.
"크리오요"의 반대어는 "페닌술라르"(peninsular : 반도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태어난 백인), "에우
로페오"(europeo : 유럽) 등의 표현이 해당된다.그러나 이들은 혼인, 친족, 부모와 자식 등의 관계
에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분되는 두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친 시대에 양자를 포함한 백인이 식민지 사회에서는 지배 집단을 구성하
고 있었다. 그 지배 흑인과 원주민인 인디언, 인디오 외에도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언, 인디오와
혼혈), 물라토(흑인과 백인 또는 흑인과 인디언과의 혼혈), 삼보(흑인과 인디언, 인디오 과의 혼혈)
등의 혼혈 민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피부색에 따라 신분이 구별되는 사회의 방식은 점차 효력을 잃어 가고 18세기가
되면서, 사회, 경제적 요인에 따라 계층 구분이 생기는 사회로 이행하였다.
즉, 유럽 출신의 스페인인(페닌술라르), 크리오요이면서 자산이 있고, 유력자와 관계가 있는 사람
들은 사회적으로 상위에 위치할 수 있는 반면에, 돈도, 인연도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는 중하
위 계층에 위치하도록 사회가 성립되고 있었다.
따라서 크리오요와 페닌술라르는 별개의 집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동일한 집단으로 묶을 수
도 없는 18세기가 되면서 구분이 모호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경제적 현실과 다른 차원에서 크리오요와 페닌술라르 사이에 균열도 존재했
고, 그것이 곧 양자의 대립이 심화되는 원인이되었다.즉 페닌슬라 안에는 유럽 태생의 사람이야
말로 우위에 위치했고,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사람은 체격과 지성에 뒤떨어지고, 소박한 정서, 혹
은 그 감정을 기반으로 사이비적인 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했다.
그러한 편견에 근거한 페닌술라르의 언동은 때로 크리오요의 감정을 자극하여, 크리올로 사이에
서 페닌술라르에 대한 반감이 조성되게 되었다.
또한 18세기에 실시된 각종 행정 개혁(부르봉 왕가 개혁)은 본국 왕실의 의도와 명령이 식민지
사회에서 재빨리 시행되길 원했으며, 그 실현에 있어서는 크리오요보다는 페닌술라르가 중용되었
다.
이러한 정치 영역에서 페닌술라르에게 주어진 특혜는 크리오요와 페닌술라르 사이에 정신적 균
열을 확대시켰다.
위와 같이 같은 이베리아 사람이면서, 신대륙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차별을 받은 것은 크리오
요들이 반도인들과 본국 정부에 반감을 품게 했으며, 이 반감이 독립 운동의 계기 중 하나 되었
다.
'세계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폴레옹 전쟁이 촉발시킨 근대세계의 변화 (0) | 2020.10.22 |
---|---|
향신료가 바꾼 세계사 (0) | 2020.10.22 |
동남아 민족 및 언어 (0) | 2020.10.21 |
DRIVING SIDE(운전석 방향) (0) | 2020.10.21 |
미국은 부동산 거래로 영토를 확장했다! (0) | 2020.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