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협상국 편에 서서 참여한 의용군 부대로, 대다수의 체코인과 소수의 슬로바키아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헝가리 왕국으로부터 슬로바키아를 독립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협상국에 협력했다.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 밀란 라스치슬라프 슈체파니크 등 망명 정치인들의 노력으로 10만 명이상의 병력이 모였다. 이들은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수차례 전투를 수행함으로써 체코슬로바키아 독립국가 창설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을 대체한 볼셰비키 정부가 동맹국과 휴전을 맺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은 볼셰비키와 싸우면서 러시아 내전에도 휘말렸다.
독일이 점령한 동유럽 영토를 가로질러 체코슬로바키아로 갈 수 없었기에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까지 가서 태평양 건너 대서양 넘어 서유럽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이들은 무기와 식량, 기차를 확보하고 러시아의 동쪽 끝, 태평양을 향해 이동했다. 수많은 열차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베리아 철도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했다. 내전 중인 나라를 가로 지르는 일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온갖 이유로 이동은 느렸다.
겨울철 얼어붙은 시베리아를 지날 때는 ‘설국열차’를 방불케 하는 풍경을 연출했을 것이다. 이 기나긴 열차 행렬에는 병영은 물론 병원과 우체국, 신문사, 은행까지 있었다. 의지와 시스템이 모두 필요한 여정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은 이 둘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체코 군단은 볼셰비키에 호의적이진 않았지만 서부전선으로 가는 일이 급했기에 내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게 체코 군단의 원칙이었다. 필요하면 백군과 함께 이동하기도 했으며, 그 반대로 백군 지휘관과 열차에 싣고가던 러시아 정부 소유의 백금 등을 볼셰비키에 넘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공받기도했다. 혁명에 반대하는 연합군은 체코군단이 철수를 돕기 위해 무기 등을 지원했다.
이들은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와 제정러시아를 복구하려는 백군 사이의 내전이 한창이던 러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바다에 도착했다.
주목할 점은 당시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우리 독립군이 체코군단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무기를 사용해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는 사실이다. 체코군단은 보유한 무기를 잘 수습해서 가져갔는데 일부에서 유출됐다.
당시 체코군단의 라돌라 가이다 장군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다 비교적 나중에 귀국했는데 그가 지휘하던 부대가 보유 무기의 일부를 한국 독립군에게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체코군단이 체코로 가져가 보관하던 유물 중에는 은비녀와 반지 등도 있다는 점이 유력한 근거다. 당시 독립군이 연해주와 만주에 이주한 우리 동포들로부터 이렇게 독립자금을 현물로 받아 이를 들고 체코군단을 찾아가 무기를 구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백군이 아닌 외국군으로서 적군과 싸운 최초의 군대가 되었다.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적군에 가담한 일부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은 후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적군인 공산군의 모태가 됐다.
서유럽으로 귀환한 뒤 대부분의 인력은 새로 창설된 체코슬로바키아 육군에 소속되었으며 남은 군자금으로 ‘체코군단 은행’을 설립해 운영했다. 이들은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백군의 부탁을 받고 러시아 제국의 국고인 백금을 운반했는데, 적군에게 백군 지휘부와 함께 이 백금을 전량 넘겨 주기로 하고 길을 무사히 통과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백금을 일부 남겼다가 가져와 은행을 설립했다는 추측도 있다. 물론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식인들의 오랜 외교활동은 더불어 체코 군단의 활약상은 독립을 이룬 바탕이 됐다. 체코군단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919년부터 1920년 중반까지 6만7739명이 귀국했다. 그사이 생긴 체코군단 병사들의 부인과 아이도 이 숫자에 포함됐다. 이들은 불굴의 인간 의지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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