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검은 나폴레옹 샤카 줄루 [아프리카의 학익진]

frog.ko 2020. 10. 25. 11:29

아프리카에 제국주의 열강의 손길이 닿던 17세기 남아프리카에는 줄루족이 세운 거대한 제국이 있었다.

 

검은 나폴레옹이라 불리우는 샤카는 1816'이클와'라는 짧은 창을 만들어 꿰찌를 수 있는 투창으로 전사들을 재무장시킴으로써 가까이서 적과 싸우게끔 만들었다. 그다음에는 나이에 따라 연대조직을 편성했다.

 

이들은 방패에 새긴 고유한 표시나 머리장식,장신구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서로 구분했다.

 

샤카는 표준 전술을 개발했고 줄루족은 모든 전투에서 이 전술을 사용했다 또 임피(전투에 나설 수 있는 조직)4집단으로 나누었다.임폰도 잔코모(impondo zankomo)라고 불리우는 황소의 뿔 전략이다.

황소의 뿔 전술은 주력부대가 위치하는 황소의 가슴, 바로 그 뒤에 위치하는 예비대 개념의 황소의 옆구리, 그리고 최정예 부대로 적의 측면이나 후방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황소의 뿔로 구성된다.

 

샤카는 주변 부족들을 점령하고,직업 군인 제도를 운영하여 남아프리카에 한반도의 6배에 달하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줄루족 군대는 조직적이었고, 엄격한 훈련을 쌓고 있었다.그들이 자랑하는 임피'는 하루에 80킬로를 맨발로 달렸다.

 

샤카는 칭기즈칸과 비슷한 전술을 구사했는데 선발대로 적들을 교란하고 적들을 포위하여 공격했다. 1827년 샤카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눈에 띌 만큼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발작으로 수 많은 줄루족이 살해당했고 1828년 샤카는 임피를 남쪽으로 파견후 무리하게북쪽으로공격하도록 보냈다.이 작전은 너무 무리여서 결국 그는 그해 9월에 두 의붓 형제인 딩간(2대왕), 음랑가나, 그리고 음보파라는 장교에게 피살되었다.50년후 1879년 당시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에 눈독을 들인 영국은 줄루족을 공격했고, 이산들와나에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당시 줄루왕국의 왕이었던 케츠와요는 2만여명의 정예용사를 데리고 이산들와나에서 영국군을 공격한다. 당시 줄루족은 짧은 창과 방패만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영국군의 10배가 넘는 강한 전사들이 있었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1,329여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는다.

 

이 전투는 남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제국주의자들을 맞아 가장 크게 이긴 전쟁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후 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 139명에게 4천의 줄루족이 전멸하고, 결국 줄루 왕국은 영국의 손에 무너지게 된다.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아프리카는 무기의 열세로 인해 제국주의 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었다.

 

줄루왕국은 1800년대 말 영국 식민지 체제로 편입됐으며 이후 독립국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왕족의 명맥을 겨우 유지해왔다. 현재 더반을 끼고 있는 콰줄루나탈에 기반을 둔 줄루족은 1994년 남아공이 민주국가로 전환하면서 이 나라 최대 부족으로서의 위상을 점차 회복하고 있다. 제이콥 주마 대통령이 줄루족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