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

외모로 보는 터키인

frog.ko 2020. 10. 27. 11:45

터키공화국의 헌법에 의하면 터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터키내에 거주하면서 터키어를 사용하는 튀르크계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과거 오스만 제국 시기의 유산으로 아직도 그리스, 불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 조지아, 시리아, 이라크 등에 거주하는 터키어를 모어로 하는 소수민족들도 수십만 단위로 있는데, 터키에서는 이들 또한 해외 터키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울러 2차 대전 이후 터키인이 많이 건너간 독일에만 해도 터키계 독일인들이 400만 가까이 거주하고 있으며, 여타 유럽 국가들을 모두 포함하는 국외 터키인의 수까지 합치면 거의 7,800만에 육박한다고 추정된다.

 

터키 공화국 건국 이후 급격한 언어 변화 및 현지 언어의 영향으로 본토의 언어와 비교적 차이가 있다. 그나마 가까운 불가리아와 그리스에 속하는 서트라키아 지방에 거주하는 터키인의 언어는 에디르네 일대에서 통용되는 발칸 방언과 비슷하다.

 

터키인의 대다수는 인종적으로 코카소이드이다. 서아시아의 코카서스 인종이나 혼혈이 많기 때문에 남,동부 유럽인의 외모도 보인다. 외모를 살펴보면 그리스인, 라틴인, 슬라브인, 알바니아인, 조지아인처럼 보이는 유럽 백인 비슷한 외모 및 반대로 아랍인, 페르시아인과 비슷한 외모가 섞여있다. 오스만 제국이 오랫동안 동서양 여러 곳을 지배해 혼혈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혼혈화는 오스만 제국 전역의 모든 계층에서 활발했고 터키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의 최고 권력자라는 술탄조차 다양한 인종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술탄의 모후는 반드시 하렘의 노예이기 마련인데, 무슬림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술탄의 모후는 거의 대부분 원래 무슬림 출신이 아닌, 비튀르크(비아랍)계 유럽인이었다.

 

오스만 제국 황가인 오스만오울루 가문의 후손들 역시 유럽 여성들과 결혼한 선대와 마찬가지로 영국인과의 결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아랍풍" 외모와는 차이가 있다.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트 2세도 어머니가 백인 노예였으며, 그도 백인 노예를 사랑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다. 셀림 2세 역시 슬라브계 어머니 때문에 금발을 가지고 있었고 금발의 셀림(Sarı Selim)이라고 불렸다.

 

오스만 제국 황제들은 대개 슬라브 여자들을 이뻐해서 노비 출신임에도 상당수의 슬라브족 여인들이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터키 남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금발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스만 황실의 여인 중 유럽인의 비중이 높아지자 민간에서도 금발벽안 여인을 미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터키 전설이나 동화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오스만 이전의 튀르크인들은 풍만하고 몽골인과 중국인처럼 찢어진 눈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을 미인으로 선호했다.

 

"유럽 백인 비슷한 외모의 터키인"은 인구 밀집지역인 서부 지역에 많이 보이며 흑해 연안 지역에도 많이 거주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결혼 상대로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던 영토의 유럽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신랑감으로는 그리스인. 신부감으로는 슬라브인이 선호되었다.

 

현재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여성과 터키 남성간의 국제결혼이 상당히 많다. 소수이긴 하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터키에 정착한 이탈리아인 등 서유럽 출신 이주민의 후손들이 현대에도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등 서부 지역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그 외에도 서부 도시들은 건축 양식부터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한편 샨르우르파, 가지안텝 등 터키 남동부 지역은 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아랍의 영량을 많이 받아 터키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아랍풍 분위기가 난다. 해당 지역 주민들 중에서는 아랍인의 후손도 보이는 편. 샨르우르파 지역 등지에서는 아랍풍 복장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특히 아랍인들이 즐겨 쓰는 두건 모자인 카피예를 쓴 주민들도 볼 수 있다. 동쪽으로 갈수록 쿠르드족이 많이 살아서인지 아랍인, 페르시아인 비슷한 외모가 많다.(쿠르드족은 넓은 범위로 보면 페르시아계) 심지어 동부 지역에는 타타르(Tatar)라 불리는 몽골-튀르크계 소수민족들까지 거주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인처럼 생긴 터키인도 극소수 존재한다.

 

흑인이 거의 없다는 점을 빼면 가히 인종의 용광로라 할 수 있을 지경인데, 사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흑인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예가 하렘의 흑인 환관들이다.

 

이런 다양한 혼혈과 인종적 문제 때문에 건국 초기 터키는 상당한 딜레마에 시달렸다. 삼대륙에 걸친 제국이었던 오스만 제국 시절은 몰라도 민족국가를 주창하며 아나톨리아에 세워진 터키에게는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아타튀르크는 "터키인이란 터키어를 쓰고 터키에서 살아가면 누구나 터키인이다. 인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라는 정의를 내렸다. 터키에서 교과서로 쓰는 그의 어록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9] 그래서 터키는 오랫동안 소수민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분리 독립 문제로 터키 정부와 갈등을 겪는 쿠르드족도 오랫동안 정식 명칭은 산악 터키인(Dağ Türkler)이었다.

 

터키인의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동쪽과 서쪽이 절묘하게 섞여있다. 정서적으로는 매우 동양적인데, 특히 정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가게에 방문할 경우 가게 주인은 으레 터키 특유의 달콤한 차이라는 터키식 특유의 홍차를 권하기 마련인데, 터키에서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심지어 주인이 식사 중일 때는 음식까지 함께 권하기도 한다. 여행 도중에 만난 터키인과 친구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매우 외향적이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말을 건낸다. 또한 한번 친구가 되면, 극단적으로 갈라져서 척을 지지 않는 이상 평생가는게 보통이다.

 

원래 오늘날 터키인들의 선조라는 튀르크는 아나톨리아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민족이었고, 아나톨리아는 어마어마하게 긴 역사속에서 오만 민족들이 각축을 벌이던 땅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다문화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튀르크족이 밀려오던 시절에는 이곳에 이주 그리스인과 그리스화한 아나톨리아인, 페르시아인, 쿠르드족, 아랍인 등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오스만 제국의 통치기를 거쳐서 터키화되거나 혹은 터키인들이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터키인의 문화는 유럽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시아적이다.

 

괜히 유럽과 아시아의 다리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2010년에 이스탄불시는 유럽연합으로부터 유럽 문화의 중심지(Avrupa kültürün başkenti)로 지정되었는데, 그때의 이유는 "동서 문화의 교차점"으로서의 이국적이고도 다채로운 문화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러한 이유 때문에 터키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터키인은 하나의 민족이다! 라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존의 다양한 문화들을 융합해낸 다문화 사회라는 정체성 또한 인정하는 (외국인의 기준으로서는 다소) 모순적인 모습 또한 보인다.

 

레반트, 북아프리카 아랍인, 베르베르(아마지흐)인들과 이란인, 중동, 서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처럼 인종학적으로 백인이다.

 

흔히 터키인들을 아시아 몽골계통의 민족으로 분류하거나 인식하는 경우가 있으나 현재 터키, 헝가리, 핀란드, 아제르바이잔 등의 나라들은 아시아 민족이 조상이지만 코카소이드 백인종에 흡수, 동화되어 현재는 몽골계가 아니다.

 

고대부터 아나톨리아에 살고있었던 아니톨리아인은 아리아인에 속했고 리디아, 히타이트등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국가들이 있던 곳이다. 그 후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까지 서방세력이 앞다투어 진출했던 지역인 만큼 백인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었고, 동로마와 아나톨리아를 두고 패권을 다툰 사산 왕조의 아제르바이잔이 그러했듯, 페르시아의 동방에서 권력 공백지역으로 들어온 터키인들은 그 지역에 많이 살고 있던 다수의 백인들에 의해 인종적으론 백인에 동화되었고, 백인들은 문화적으로 투르크화되었다.

투르크어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