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에 있었던 슬라브계 군사집단. 민족적 기원보다는 특정한 지역에서 형성된 종족으로서, 전쟁에 기병대로 자주 나갔기에 일종의 군사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러시아의 돈 카자크(= 쿠반 카자크)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자포로제 카자크는 그 기원부터 달리하는 집단이므로 서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
크게 러시아의 돈 강 하류가 기원인 돈 카자크(= 쿠반 카자크)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지역이 기원인 자포로제 카자크로 구분하여 살펴 볼 수 있다. 돈 강 유역의 카자크와 드네프르 강 유역의 카자크는 최초 단계에서 유사한 역사적 배경과 유사한 경로를 거쳐 유사한 형태를 가진 '경계인 집단'으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역사 과정의 길을 걷게되었다.
폴란드의 지배를 받던 자포로제 카자크는 주변의 폴란드, 루스 차르국, 크림 칸국 및 칸국의 후견국가인 오스만 제국 등과 때로는 협력을, 때로는 대립하면서 끊임없이 자립을 추구했다. 폴란드는 자포로제 카자크를 폴란드 사회에 편입시키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카자크 및 왕국 내 루스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결과적으로 자포로제 카자크의 저항은 폴란드의 운명에 치명상을 입히고 만다. 최종적으로 자포로제 카자크 집단은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이후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카자크 헤트만국을 해체하고 '소러시아' 관구를 설치했다. 이로써 자포로제 카자크의 역사도 함께 종언을 맞았다. 하지만 자포로제 카자크는 소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루스를 거쳐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민족 정체성의 토대가 됐으며 현대 우크라이나의 직접적인 뿌리로 여겨지는 집단이다.
반면 돈 카자크는 일찌감치 러시아 치하에 편입되었고 어느정도의 자치를 허용받는 대가로 차르를 위해 복무하는 특수한 군사집단으로 변모했다. 즉 일종의 군사적 카스트 또는 '신분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돈 카자크를 편입하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폴란드 역시 카자크를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였다. 돈 카자크들은 러시아 제국의 선봉이 되어 영토팽창에 앞장섰다. 이들은 캅카스,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는 물론 극동의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경계지역을 따라 널리 이주하였다. 결론적으로 돈 카자크들은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종언을 맞을 당시에도 계속 존속했고, 러시아 내전을 거쳐 소련이 수립되는 격동기에도 카자크는 '봉건제의 잔재'로 탄압받으면서도 명맥을 계속 이어왔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후 기병 병과의 해체로 카자크들은 일반 시민으로 돌아가야 했으며 전통적인 사회조직과 자치권도 완전히 해체되었다. 더해서 나치 독일에 부역한 백계 카자크들로 인해 소련에 충성한 카자크 역시 '잠재적 배신자'로 여겨져 백안시당하고 억압받았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 카자크는 러시아 애국주의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으며 긍정적인 면모가 부각되었다. 그 결과 돈 카자크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카자크 문화의 복원과 부흥이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장려되고 있다.
카자크는 러시아어로는 Казаки(카자키)라고 부르고, 원조인 우크라이나어로는 Козаки(코자키), 폴란드어로는 Kozacy(코자치)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로는 Kozáci(코자치), 벨라루스어로는 Козакі(코자키). 영어로는 Cossack(코삭, 코사크)라고 한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족과 발음이 비슷한데, 영어로는 어느정도 구별이 되지만 러시아어로는 Казаки와 Казахи로 한 글자 차이라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카자크족은 슬라브계 민족이고, 카자흐는 튀르크계 민족이며, 둘은 별개의 종족이다.
카자크의 형성 과정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섞여 들어갔고, 형성 시기도 특정한 시기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본격적으로 코사크가 역사 속에서 주요한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은 15세기다. 이 시기를 보통 '우크라이나의 코사크 시대', 짧게 '코사크 시대'라고 하기도 한다.
이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은 14세기 즈음에 형성됐다고 추측된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키예프 공국과 여러 제후국이 사라지고 몇몇 슬라브 인들이 남부 러시아 스텝 지역으로 흘러들어가 반유목화가 된 것을 그 기원으로 잡기도 하고, 몽골군에서 떨어져 나간 타타르인들과 튀르크계 유목민족의 일부가 이 시기에 슬라브화가 되어 카자크를 형성했을 것이란 학설도 있다. 아마 코사크 집단의 기초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 2가지의 민족 그룹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튀르크의 지배에 의해 튀르크화된 돈 강과 자포리자 지역의 슬라브 원주민들이다.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 드니프로 강의 자포리자 카자크와 돈 강의 돈 카자크가 발생한 것을 대개 그 시작으로 15세기 말 부터 20세기 초까지 드니프로 강 하류, 돈 강, 테레크 강, 우랄 강 유역 일대에 드문드문 흩어져 살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치사 및 문화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에게는 대장 불리바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인들과는 다른 유목민족이며 자포리자 카자크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봉신이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로부터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17세기 중반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흐멜니츠키 봉기라고 부르는 무장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선언하고 카자크 수장국을 수립했다. 그 뒤 페레야슬라프 조약(1654년)으로 카자크 수장국은 러시아의 세력권에 편입되었다. 한편 돈 카자크는 16세기에 정립되었으며 루스 차르국과 동맹을 맺었다.
짜르 정권은 국가의 영토 확장을 위해 이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우랄과 시베리아, 극동을 정복하고 동화하며 러시아 제국을 형성하는 데서 카자크들이 담당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랄과 시베리아, 극동의 많은 현대 도시가 다름 아닌 카자크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르쿠츠크, 하바롭스크, 옴스크, 톰스크, 야쿠츠크, 블라고베셴스크,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 오렌부르크,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스노다르, 심지어 그로즈니까지 오늘날 러시아연방의 주와 자치주 수도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목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자크들은 태평양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태평양도 이들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1648년 카자크 세묜 데즈뇨프는 이후 러시아의 알래스카 진출을 위해 아시아 쪽 아메리카를 개쳑했다.
18세기가 되면 러시아 제국의 카자크들은 국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완충지대의 역할을 했다. 러시아 제국은 카자크의 자유와 자치, 독립에 간섭하면서 그들을 길들이려 했다. 이에 카자크들은 스텐카 라진, 콘드라티 불라빈, 이반 마제파, 예멜리안 푸가초프 등을 지도자로 하여 여러 차례 반제정 반란을 일으켰고 일부는 내전 수준으로 비화했다. 러시아 제국은 고문과 사형을 동원하며 이를 모두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707년-1708년의 불라빈의 난 진압 이후 돈 카자크의 서쪽 자치구가 철폐되었고, 1708년 마제파의 난 진압 이후 바투린의 카자크가 철폐되었다. 1775년 푸가초프의 난이 진압된 뒤에는 드니프로 강 하류 자포리자 카자크가 공식적으로 해산당했다.
18세기 말엽이 되면 카자크 민족은 러시아 제국의 신분제도에서 소슬로비예라는 특수 군사신분을 이루었다. 이는 중세 서유럽의 기사제도와 유사한 것으로서, 카자크들은 군마와 병기 및 보급품을 각자 조달해야 했고 러시아 정부에서는 총기만 보급해 주었다. 민족 자체가 준군사 문화에 의해 규정되었던 만큼 카자크는 18세기-20세기 러시아 제국의 전쟁들(대북방 전쟁, 7년 전쟁, 크림 전쟁, 나폴레옹 전쟁, 코카서스 전쟁,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러시아-튀르크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에 동원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차르주의 정권은 카자크를 폴란드인과 유대인에 대한 포그롬을 수행하게 하는 등 공포정치에 이용했다. 또 국경지대 방어와 제국 내부의 소수민족들 간의 경계 방어에도 카자크가 사용되었다.
제정이 러시아 혁명으로 망한 뒤, 돈 카자크와 쿠반 카자크가 최초로 볼셰비키에 대해 전쟁을 전포함으로써 내전이 시작되었다. 1918년이 되면 카자크들은 완전히 독립적인 상태가 되어 우크라이나국, 돈 공화국, 쿠반 인민공화국 등 자기들의 국민국가를 세웠다. 카자크 병력과 카자크 국가들은 반볼셰비키 백군의 주축을 이루었다. 내전이 볼셰비키의 승리로 끝나면서 과거 카자크들이 살던 지역에서는 카자크 말살정책이 실시되었다.
라스카자치바니예(영어: decossackization)은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적백내전을 거쳐 성립된 소련에서 카자크, 특히 돈 카자크와 쿠반 카자크를 의도적으로 탄압한 정책이다. 볼셰비키는 민족적 정치적 경제적 실체로서의 카자크를 지워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1917년에서 1933년 사이에 이 정책을 실시했다.
소련체제의 확립과 더불어 특권계층으로서의 카자크 집단은 해체되었고 부농박멸운동과 농업집단화가 진행되었다. 1936년 카자크의 赤軍(적군) 참가 제한이 폐지되었고, 새로 편성된 카자크 사단은 독 ·소전쟁에서 용명을 떨쳤다.
소비에트 해체후 코자크는 직업군인으로 부활하고 있으며 체첸내전및 보스니아 내전등에 참전하고 있으며 코자크 군사학교를 설립하여 전통을 이어 나가고 있으며 러시아군내에서도 지원병이 가장 많은 민족이다.
2010년 러시아 연방의 인구조사에서는 카자크가 별개의 민족으로 취급되고 있다.
출처:위키피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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