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는 원래 칼레도니아라고 불렸으며, 현재의 이름은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스콧족의 정착지라는 뜻의 스코샤(Scotia)에서 유래한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영국)는 인종부터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켈트족,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으로 구성됐다.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와 함께 영국(United Kingdom)이라는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스코틀랜드와 종교와 언어도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장로교, 잉글랜드는 성공회를 각각 믿는다. 스코틀랜드는 게일어(語)라는 독자 언어도 갖고 있다.
이런 두 나라가 한 나라로 통합되게 된 배경에는 ‘왕실 혈통의 얽힘’이 있다. 1603년, 평생 독신으로 산 엘리자베스 1세는 사망하면서 스코틀랜드 국왕인 제임스 6세를 왕위 계승자로 지목했다. 제임스 6세는 스코틀랜드 왕실 혈통뿐 아니라 잉글랜드 왕실 혈통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6세의 어머니인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 여왕은, 잉글랜드 국왕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인 헨리 8세의 누나다.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로 건너가 ‘제임스 1세’로 잉글랜드 왕위에 즉위한다. 그리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두 국가의 왕위를 겸하는 최초의 왕이 된다. 그는 재임 동안 화폐를 통일하고, 두 국가의 국기를 섞은 ‘유니언 잭(영국기의 초기모델)’을 만드는 등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스스로를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의 왕’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의 통합정책에 힘입어 약 100년 후인 1707년 두 국가는 합쳐진다.
이때까지 스튜어트 왕조의 왕은 '잉글랜드 국왕'과 '스코틀랜드 국왕'을 겸임하던 형태였으나, 1707년 1월 1일을 기해 연합법의 제정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란 이름의 연합왕국의 형태로 변경되면서 기존까지 동군연합으로 구성되던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에 있던 여러 왕국들은 '연합왕국 국왕'이란 하나의 군주 아래에서 구성된 각각의 지방이 되었다.
하지만 민족 구성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계속 반목해왔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쉽게 동화되지 못하였고, 잉글랜드가 연합왕국의 주도권을 가지는 중심 지역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소외감과 민족적 자존심 문제로 끊임없이 부딪쳐왔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의 몰락으로 스코틀랜드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조선과 철강업, 광업 등의 영국 내 중공업이 쇠퇴하고, 이를 국가 지원으로 유지해왔으나 마거릿 대처 수상 재임기간에 이루어진 대규모 사기업화와 산업 정리로 인해 스코틀랜드 지역은 경제적 몰락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스코틀랜드의 경제적 독립이 가시화되었고, 스코틀랜드 독립파는 이것이 분리독립 운동으로 이어졌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될 경우 영국 내 북아일랜드, 웨일스 등의 독립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성공한 아일랜드 사례도 있다. 아일랜드는 12세기 영국 왕가의 침략을 받고 영국의 식민지가 됐으며, 1801년 결국 영국과 합병됐다. 합병 후에도 영국의 압제와 차별에 시달리던 아일랜드는 1916년 공화국을 선포하고, 1919년 ‘부활절 봉기’를 시작으로 게릴라 전쟁을 지속했다. 그리고 1921년,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를 제외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