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

베두인과 베르베르인

frog.ko 2020. 11. 7. 04:37

베두인(bedouin):아랍어로는 '사막의 거주민'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아랍인과 동일한 민족으로 보지만 아랍인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총칭하기 때문에 수단의 흑인계 아랍인도 있으며, 시리아의백인계 아랍인도 있다. 베두인은 이 아랍인들 중 유목민, 특히아라비아 사막에서 유목하는 씨족들을 일컫는다. 즉 유목생활하는 아랍인이라고 보면된다.

 

이 사람들은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며 씨족사회를 형성 중이다. 사막의 유목민이라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게 바로 이 사람들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국가 성립 시기가 매우 늦고동로마 제국과사산 왕조사이의 일종의 완충지대로써 국가가 없는 시기가 매우 오래 지속되었기에 베두인의 씨족사회끼리 서로 전쟁이나 거래를 하곤 했다.

 

간혹 어떤 씨족이 강성하게 되어 짧게나마 왕국이나 제국을 세우는 일은 있었지만 모두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이슬람탄생 전까지 씨족사회가 변함없이 지속되다가 이슬람의 성립과 함께 하나의 나라 아래 뭉치게 되고 베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해졌다.

 

원래는 부족 제도의 특성에서 오는 분열성이 심하고 그 중심에는 씨족 간 다툼이 그치지 않아 좀처럼 뭉치지 못하는 민족이었다.

 

유목민족으로써 성격이 맹렬하고 싸움에 있어선 무자비했기 때문에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에 중추적인 군사적 역할을 수행했다.

 

초기 이슬람의 세력 전파 후 군영 도시의 주요 구성원들. 누가 찾아와서 의탁하더라도 하루에 차 한 잔씩 주며 삼 일은 무조건 보호해주는 규칙이 존재한다.

 

유목민이지만 모두 유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상인이 되어 중개무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도시나 마을로 가서 정착하여 농사짓고 장사를 하여 정주민족들과 어울려 살기도 했다.

 

또한 어업에도 종사하여 어부로 사는 베두인들도 있다. 현재는 이촌향도 현상에 따라 베두인들의 생활도 많이 바뀐 터라 대부분이 도시와 마을로 이주하여 생활한다. 진짜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은 전체 인구에서 고작 5%에 불과하며 반유목 생활하는 베두인들조차 10%에 불과하다. 특히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사막화로 유목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터라 더는 유목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요르단에서는 베두인이 국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인구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게 쫓겨나 이주해온 팔레스타인인이 더 많지만, 원래 요르단은 건국 자체가 베두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요르단 정계는 베두인이 많으며 베두인 족장들의 경우 요르단 내에서 고위직이 많기에 국왕과 왕실도 무시못할 정도다. 베두인으로 이루어진 요르단군은 아랍권의 최정예 군대라고 한다.

 

이스라엘조은 이들이 꽤 많이 사는 시나이 지역을 지배할 당시, 이들에게 막대한 지원과 혜택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럼에도 베두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심한 차별을 받는다.

베르베르인

지금의 알제리와 튀니지, 모로코 등 주로 마그레브에 사는 유목민이며 이집트 서부 일부 지역에도 거주한다.

사용 언어는 베르베르어인데 소속 어족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하나 유전적으로는 이탈리아인을 비롯한 라틴계 백인들과 매우 가깝다.

 

사막 유목민이라서 말, 낙타 등 동물을 잘 키우며, 전체적으로 사납고 용맹하다고 한다. 흔히 용감한 사막의 유목민이라면 아예 생활권 및 근거강역 자체가 다르지만 베두인과 함께 많이 떠오르는 게 이들이다. 원래 명칭은 "아마지흐" 또는 "이마지헨"이다.(베르베르는 "야만적인", "야만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에 북아프리카 지역이 고대 카르타고와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데다가 남이탈리아와 스페인 일대, 북아프리카 전역을 하나로 통합하여 아랍인들이 지배한 적도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차례 이민과 혼혈이 성행했으며, 이들의 외양은 남유럽인들과 얼추 비슷하게 되었다.

 

고대 서구 세계에서 뛰어난 경기병대로 명성을 떨쳤던 누미디아, 고대 이집트 제국과 접했던 고대 리비아 및 사하라 사막 일대에 관개 수로를 건설한 가라만테스족, 오늘날 모로코에 해당하는 마우레타니아 등이 베르베르인의 선조에 해당한다.

 

서기 7세기 말부터 8세기 중엽까지 70년 동안 약 35번에 걸쳐 아랍인들과 치열하게 맞서 베르베르 대항거를 벌였다. 그 후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교체기에 동방 칼리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이베리아의 후우마이야 왕조가 완전히 무너진 11세기 이후, 쉬아 이스마일파 파티마 왕조 및 모로코 일대의 베르베르계 세력이 세운 무라비트 왕조, 무와히드 왕조, 마린 왕조가 북서아프리카의 패권을 잡았다. 이후 파티마 왕조 치하의 베두인 유목민들이 북아프리카 상당수 지역 농경지를 황폐화시키고 이슬람교를 믿는 베르베르인들의 주도 하에 아랍인과 아랍 문화에 조금씩 동화되어 현재 북서아프리카 인구로 이어진다.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던 시절, 북서아프리카 지역의 이들과 아랍인들, 그리고 흑인들을 무어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800년간 받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이들의 후손이 많다.

 

베르베르인을 아랍인, 베두인의 일파 정도로 오해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지만,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은 별개의 민족이다.

 

오히려 이탈리아계를 비롯한 라틴계 백인에 가깝다. 7세기 이슬람의 확장 이전까지 아랍인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거주하던 민족이었고, 베르베르인은 전통적으로 북아프리카에서 거주하던 여러 민족들의 후예이다.

 

두 지역 사이에는 이집트라는 별개의 문명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두 민족은 멀리 떨어진 남남이었다. 7세기 이후 아랍인의 치열한 공세 끝에 결국 기존의 기독교나 토착 신앙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들은 자신들이 무슬림이기는 하지만 아랍인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높다. 다만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사이의 통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베두인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기원한 아랍어를 쓰면서 유목 생활을 하는, 민족 집단이라기 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집단에 가까운 반면 같은 사막 유목민이라 해도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이나 베르베르인은 언어 자체가 아랍어가 아닌, 독자적인 민족 집단이다.

 

그것도 이슬람이 8세기 경 마그레브 일대를 평정한 이후 몰려 온 아랍인들과 현지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반목해 오며 끝까지 정체성을 지켜온 자존심 강한 전투민족이다.

 

물론 북서아프리카 일대의 아랍인들(아랍계)들은 이곳의 이마지헨(베르베르인)들과 같이 지내면저 서로 혼혈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정서, 문화, 사회 등 부분적으로 동화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베르베르에서 아랍으로, 반대로 아랍에서 베르베르로 서로 동화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아랍계 베르베르인(arab-berbers)이라고 부르며, 반대로 베르베르계 아랍인들도 있다. 위에서 언급된 카다피도 아랍계 베르베르인 출신이다.

 

분파로는 투아레그족,하라틴인,관체족이 있다.

 

Tuareg. 사하라 사막에서 나이지리아, 수단 공화국 등의 서아프리카 지대에 걸쳐 살고 있는 베르베르족의 일파. 한 때 "죽음의 전사"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투아레그어[1]를 사용하며, 이슬람을 믿는다. 투아레그라는 종족명칭은 아랍어로 투아레그인을 가리키는 명칭인 타와리크에서 온 말이고, 투아레그인 스스로는 베르베르어로 "자유인"이란 뜻의 "이마지겐 (Imazighen)" 혹은 "아마지그(Amazigh)"라고 부른다.

투아레그족은 프랑스 식민지시절 프랑스로도 상당수가 건너가서 생활하고 있지만, 현재 프랑스 내 투아레그 출신 이주민들은 '마그레브'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 아랍계 이주민들로부터도 차별받고 있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더불어 니제르와 말리 및 차드에서 내전까지 지금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쿠르드족이나 베두인처럼 여러 나라에 떨어져서 살다보니 서로가 남남이 되어 힘을 합치기가 어렵다고 한다. 

무어인(Moors)=하라틴인:좁은 의미로는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하던 무슬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반란군에 참전한 모로코의 무어인



다만 이들이 대부분 현대 모로코를 비롯한 북서아프리카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는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까지 전부 '무어인'이라고 한다. 어원은 로마 제국 시절 북서아프리카를 가리키던 말인 마우레타니아. 모리타니란 국가 이름과 어원이 같다. 

크게 베르베르인과 흑인, 이주민인 아랍인으로 구분되지만, 유럽인들은 이들을 크게 분간하지 않고 그냥 통틀어 무어라고 불렀다. 이슬람 세계에는 이 '무어'에 해당하는 말이 없었으며 북서 아프리카 지역은 마그레브, 이베리아 지역은 알 안달루스(안달루시아의 어원)라고 불렀다. 현대에서는 아랍인+베르베르인 혼혈인을 나타낼 때 쓰인다.

하라틴인이라고도 한다. 현대의 모로코와 알제리, 튀니지, 몰타, 모리타니 사람들이 중세 무어인들의 후예라고 볼 수 있다.
관체족(스페인어 Guanches):관체족들은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에 살던 민족이었다. 베르베르인과 가깝지만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눈 혹은 회색눈이 많았다고 하며 신석기 시대 수준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관체족들은 15세기에 스페인의 정복이후에 스페인인들에 동화되고 17세기 이후로는 관체족 문화와 언어는 민간에서 사멸되었다. 

스페인군은 1402년부터 카나리아 제도의 섬들을 하나씩 공략하기 시작했으나 1496년에 스페인군이 테네리페 섬에서 벌어진 2차 아센테조 전투에서 관체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카나리아 제도 정복이 완료되었다.

관체인들은 베르베르족들과 매우 가까운 민족이었다. 하지만 베르베르족과 가까웠다는 것을 빼면 관체족들의 전반적인 문화, 생활상이 밝혀지진 않았다. 기원전 1천년 경 이후부터 기원전 6백년 경 사이의 기간에 북아프리카에서 카나리아 제도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베르베르계 민족들이 아랍의 정복으로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지만, 관체족들은 스페인의 정복이후에도 계속 고유의 토속신앙을 믿었다.

관체족들은 스페인인들에 동화되었고, 많은 관체족들이 죽거나 스페인 본토에 노예로 팔려갔으나 관체 혈통은 절멸되지 않고 남아있다. 오늘날에도 카나리아 제도의 주민들의 42~73%는 관체족 모계 유전자(mtDNA)를 보유하고 있다. 카나리아 원주민 부계 유전자를 보유한 경우는 16% 정도로 조사되었다. 또한 관체족은 스페인인들과 동화되기 이전에도 유럽계 조상과의 통혼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Middle East Regional D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