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몽골제국이 역사에 남긴 미아, 아프간 하자라족

frog.ko 2020. 11. 9. 05:55

하자라란 페르시아어로 ‘1을 의미하는 하자르(hazār)에서 나온 말이다. 하자르는 몽골어로 천인대를 의미하는 minggan의 번역어일 가능성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북방에 있는 하자라라는 마을은 티무르 왕조의 시대에 그 지역에 정착한 부대에서 그 이름이 기원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에 걸쳐 거주하며 시아파의 12이맘파를 믿는 소수민족이다. 외모는 튀르크계 황백혼혈이며 문화적으로도 중앙아시아와 공통점이 꽤 있지만 페르시아어의 방언인 하자라어를 사용해서 인류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4백만 명, 파키스탄에 90만 명, 이란에 50만 명이 거주한다.

그리고 인종/종교적 이유 등으로 박해를 많이 받는 소수민족으로 유명하다보니 호주, 뉴질랜드, EU에 난민으로 정착한 하자라족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몽골 제국 혹은 티무르 제국의 튀르크계 부족들로 구성된 군인들의 후손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아프간 전체 인구의 약 20% 정도이자, 아프간 시아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전적으로는 튀르크 계통과 비슷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튀르크어족 계통이 아닌 페르시아어 방언에 속하는 다리어인 관계로 기원이 아직 미스터리에 쌓여 있다. 확실히 이들은 터키어 계통의 언어를 쓰진 않는다.

 

단서라고는 아프가니스탄의 타지크계 유목민족인 아이마크인 중에 하자라인들과 같은 방언을 쓰고 외양이 비슷하지만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아이마크 하자라족으로 아이마크인은 백인에 가깝지만 아이마크 하자라족은 황백혼혈의 모습에 가깝다. 아이마크인들의 유래가 몽골 제국 이후에 출현한 티무르 제국의 건국에 도움을 준 튀르크계 유목민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하자라인들의 기원은 아마도 티무르 제국이나 그 이후의 사파비 왕조 시절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한 약탈 부대 카라우나스의 후손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자라족이 시아파 12이맘파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시아파 근본주의 성향의 사파비 왕조가 아프가니스탄 서부 일대를 장악하고 신민들을 순니파에서 시아파 12이맘파로 개종시키던 16~17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민족들이 수니파 이슬람 혹은 시아파 이스마일파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란과 이들의 연관성이 나름 깊다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몽골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모골인(Moghol), 튀르크계 우즈베크인, 투르크멘인의 경우 아프간 내 다른 민족들과 혼혈이 상당히 많이 진행된 반면 이들은 종파 차이 문제로 아프간 내 이웃 부족들과의 통혼이 흔하지 않았다. 이들이 파슈툰인의 통제를 받게 된 시점은 19세기 바라크자이 왕조 시절 복속하고 세금을 지불한 게 최초이다.

 

한편 이들의 유전자를 검사해 본 결과 우즈베키스탄, 위구르 등 차가타이계 튀르크 제족들과 비슷한 것으로 나왔다. 언어가 갈려서 그렇지 원래는 위구르인과 형제뻘 되는 셈이다. 차가타이계 왕조인 티무르 제국 역시 페르시아어가 공용어였고 티무르는 페르시아어가 모국어였으며 대다수 귀족들이 비슷한 처지여서 이상한 건 아니다.

아이마크인

아이마크인은 몽골 제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 당시 서부 지역이 사막화되자 농경을 포기하고 유목을 시작하며 튀르크화된 타지크인들의 후손들이다.

 

주로 아프가니스탄 서부에 거주한다. 튀르크멘인들과 매우 가까운 사이지만 언어는 다리어 방언을 사용하는 편이다. 젬시드족, 피로즈코히족, 타이마니족, 테이무리족 이렇게 네 개의 주요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이마크 하자라족의 경우 하자라족과 매우 가깝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내 140만여 명의 아이마크인들이 거주하며 20만여 명 정도는 이란에 거주한다고 한다.

 

튀르크계 언어가 아닌 다리어를 쓰지만 튀르크계-몽골계와의 통혼으로 인해 이들의 외양은 아프가니스탄 내 다른 민족들에 비해 황백혼혈 특성이 강하다.

 

특히 아이마크인의 일부 아이마크 하자라족의 경우 외양에서 황인종 형질이 상당히 강해 하자라족과 외양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아직 하자라족의 기원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이들과 하자라족 사이의 근연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하자라족이 거의 대부분 시아파 12이맘파를 믿는데 비해 아이마크인들은 상당수가 순니파 이슬람을 믿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내 226천여 명이 거주하며 타지키스탄 내 거주하는 아이마크인들은 전부 아이마크 하자라족이라고 한다.

이란에 거주하는 아이마크인들은 상당수가 시아파로 개종했다고 한다.

 

카라우나스

페르시아 동부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조직적인 약탈을 일삼던 집단. 그 유명한 마르코 폴로도 1272년 이들과 조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 부대는 '탐마'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오고타이 칸의 치세에 최초로 파견되어 인도와의 국경지대에 주둔했다. 그들은 몽골의 다양한 부족 출신으로 구성되었고, 사실상 새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부족'이었다.

 

13세기 페르시아 사료(史料)에 따르면 '카라우나스'는 대개 일칸국의 적대세력으로 묘사된다. 이는 '카라우나스'에 일칸국의 경쟁자인 킵차크칸국의 장군이 지휘하는 병력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훌레구가 페르시아-이라크 원정을 단행할 때 대칸 몽케가 '탐마'로서 군대를 뽑아 훌레구에게 주었는데, 킵차크칸국에서도 전통에 따라 일부 병력을 지원했다.

 

훌레구의 정복이 끝난 뒤, 각자의 영토 경계를 놓고 두 칸국끼리 분쟁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킵차크칸국에서 차출되었다가 살아남았던 이들 병력이 '카라우나스' 부대와 합류해 일칸국의 배후를 교란했던 것이다. 계속된 전쟁 끝에 일부 '카라우나스'는 결국 일칸국에 항복했지만, 나머지는 중앙아시아의 차가타이칸국에 귀순해 계속 일칸국을 적대했다.

 

탐마(tamma)

정보를 수집하고 정복지를 관리하기 위한 소수 정예부대. 탐마에 소속된 대원을 탐마치(타마친)라고 하며, '탄마(tanma)'라고도 불렀다.

 

초창기 이들은 몽골족 전체 병력 중에서 차출된 일종의 파견부대였다.

 

목적은 점령지에서 몽골족의 통치를 유지하거나 가능하면 확장하는 것이었고, 초기에는 대체로 스텝지대와 정주(定住)사회의 경계지대에 주둔했다. 정규군이 아니어서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편성되었는데, 1250년대 훌레구가 페르시아와 이라크를 치러 갈 때 형인 대칸 몽케가 '탐마' 군대를 내주었다.

 

페르시아의 역사가이자 일칸국의 관료였던 주베이니의 서술에 따르면, '탐마' 부대는 활용가능한 몽골족 병사 10명당 2명을 뽑아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후기로 갈수록 순수 몽골족으로만 구성되었던 규칙이 약해져 점차 정복지의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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