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아프리카의 세계 대전 '콩고 내전'

frog.ko 2020. 10. 12. 04:53

콩고 민주공화국은 중부 아프리카의 적도에 걸쳐 있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큰 나라로 옛이름은 자이르(Zaire)이다. 국토 면적은 2,344,858 ㎢으로 세계 12위로 인구는 85,026,000명(2016년)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국가로 순도 높은 동광과 코발트광은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다.

 

이웃의 콩고 공화국과 구별하기 위하여 수도 이름을 붙여 킨샤사 콩고라고 부르기도 하고, 약칭으로 DR 콩고, DRC(이상 영어), RDC(프랑스어), 민주콩고, 동콩고로도 부른다.

 

10∼14세기에 서쪽과 북쪽에서 지금의 콩고 민주공화국으로 들어와 16세기 유럽의 침략을 받을 때까지 왕국을 이루며 번창했던 반투족이 지금도 인구의 과반수를 이루며 국가 면적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800여개의 부족으로 나뉘며, 주요 종족으로는 콩고족, 룬다족, 몽고족  등이 있다. 그 밖에 60여만명의 피그미족들이 살고 있다. 

 

지금의 영토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왕국은 카탕가(샤바) 지역의 루바 왕국이었다. 루바 왕국은 16세기에 콩골로라는 이름의 한 무사가 카탕가 지역의 작은 추장령들을 정복하여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수립한 데서 비롯되었다(루바-룬다 제국). 서북쪽에는 많은 작은 추장령의 연합체인 쿠바(Kuba) 왕국이 있었는데, 18세기에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1880년대 초, 벨기에 레오폴 2세의 후원을 받은 헨리 스탠리를 통해 개인 소유의 콩고 자유국이 되었다.

 

레오폴드는 콩고 자유국을 창립하고 사병을 통해 다스렸다. 이 개인 소유의 나라는 벨기에의 76배 크기를 가졌고 동부 미국과 비슷한 크기였다. 하지만 그는 콩고인들을 무자비하게 다뤘고 수백만 콩고인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 결국 벨기에 의회에 의해 소유권을 벨기에 정부로 넘겨주게 되었다.

 

1960년 콩고민주공화국이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그리고 독립하자마자 한때 콩고독립운동의 3인방 이었던 루뭄바와 카사부부, 촘베 간의 갈등이 심각해젔다. 특히 파트리스 루뭄바 총리와 조제프 카사부부 대통령의 대립이 극심했고 동남부 카탕가 주 총리 모이스 촘베가 벨기에의 지원 하에서 독립을 선언하였다.

 

벨기에군은 국제 연합에 의해 곧바로 철수했으나 상당수가 용병으로 남아 촘베의 편을 들어 내전은 끝나지 않았고, 소련 등의 지원을 받던 루뭄바와 프랑스, 벨기에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권의 지원을 받던 촘베, 그리고 미국의 지원을 받던 카사부부 간의 삼파전이자 대리전으로 번졌다.

 

유엔은 다그 함마르셸드 사무총장의 지시아래 창설이래 처음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로 결의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카사부부 대통령을 지원하여 독립을 선언한 촘베를 진압하기로 결정하였다. 그에 따라 모토르 작전이란 공세작전을 입안하여 카탕가 주의 수도 엘리자베스빌을 점거하는데 성공한다.

 

1961년에는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했던 아일랜드군 병력이 자도빌에서 촘베의 부대에게 포위되어서 약 6일 동안 저항했으나, 결국 항복하고 이후 협상으로 풀려난 일도 있었다. 이를 소재로 한 '자도빌 포위작전'이란 제목의 아일랜드 영화가 있다. 전투의 자세한 내용은 자도빌 전투 문서를 참조.

 

이런 상황에서 군부의 모부투 세세 세코가 잠정정권을 수립해 카사부부의 묵인하에 루뭄바를 체포한 뒤 촘베에게 보내서 촘베 휘하의 벨기에 용병이 처형하게 해버린다. 이후 카사부부와 촘베와의 전쟁이 격화되자 모부투는 유엔 평화유지군과 함께 1963년 카탕가의 촘베를 진압했다. 그러나 연합 정권의 극심한 혼란에서 1964년 로디지아를 거쳐 스페인으로 망명한 촘베가 돌아와 총리가 되어 콩고민주공화국 전체의 실권을 쥐게 되었다.

 

한편 파트리스 루뭄바의 측근이었던 피에르 물렐레가 서남부 크윌루 지역에서 루뭄바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내걸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동부로도 크게 확대되어 루뭄바의 동지였던 크리스토프 그벤예가 심바 반란을 일으켜 동부를 장악했다. 피에르와 그벤예는 소련의 지원을 받고 중국과 손을 잡아 마오이즘식 게릴라 전술을 채택했다. 이때 쿠바의 군사고문단도 왔는데 체 게바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공산주의식 게릴라 전술을 반란군에 가르쳤다. 총리였던 촘베는 심바 반군 진압을 위해 옛 카탕가주 용병까지 불러오고 모부투와 손을 잡았으나 카사부부와의 갈등으로 정국의 혼돈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1965년 모부투는 콩고의 안정을 바란 서양 열강의 지원을 얻어 또 쿠데타를 일으키고, 카사부부와 촘베를 모두 축출한다. 이후 모부투는 대통령이 되고 촘베는 스페인으로 망명해 반모부투 활동을 전개했다. 크윌루-심바 반군과 콩고 정부군의 전투는 계속됐으나 체 게바라도 실망할 정도의 오합지졸인 반란군은 지도부 사이의 내부 분열이 극심했다. 이후 중소결렬로 중국과 소련의 사이도 나빠져 국제 공산주의 세력의 지원도 크지 않아 연이어 패퇴, 결국 내전은 정부군의 우세로 접어들어 최대 10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일단락되었다.

 

1967년 촘베를 지지하던 카탕가 주에서 또 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고 촘베는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1967년 프랑스 정보부 DGSE의 전신인 SDECE에게 납치되어 알제리로 끌려갔고[5] 감옥에 있다가 가택연금 상태에서 196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패전 직후 도망갔다가 사면을 약속받고 항복한 피에르 물렐레는 이후 체포되었으며 약속은 휴지조각이 되고 처형되었다. 크리스토프 그벤예는 우간다로 도망쳐 거기서 살다가 2015년에 사망했다.

 

경쟁자가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32년간의 모부투 독재 정권이 콩고에 수립되었다.

 

그러나,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패, 인권침해, 국가경제의 침체 등으로 제1차 콩고 내전이 일어났고,이 내전에 승리한 게릴라 출신 로랑데지레 카빌라가 1997년에 모부투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해 나라 이름을 다시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바꿨다.

 

콩고 내전은 국제전의 양상을 보여왔기에 그동안 ‘아프리카의 제1차 세계대전’으로 불려왔다. 르완다는 콩고의 로렌트 카빌라가 이끄는 당시 반군을 도와 1997년 카빌라가 정권을 쥐도록 한산파역을 했다.

 

그러나 투치족이 지배하는 르완다에 대한 나쁜 국민감정을 배경으로 카빌라가 독자노선을 걸어가려 하자 르완다는 1년 뒤 다시 그를 뒤엎으려 나섰다.

 

1998년 여름 르완다와 우간다가 그동안 지원해 온 로렌트 카빌라 정권을 뒤집어 엎어 무너뜨리려고 반군들을 조직적으로 부추겨 일어난 콩고 내전은 국제전의 모습을 띠어왔다.

 

카빌라 정권의 긴급요청에 따라 짐바브웨, 앙골라, 나미비아가 군대를 보냄으로써  콩고는 르완다군 2만명과 우간다군 1만명에 맞서 짐바브웨군 1만2000명, 앙골라군 7000명, 나미비아군 2000명이 대치했다.

 

그러나 외국 군대들이 병력을 단계적으로 철수함에 따라 내전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반군을 지원해 온 르완다-우간다군도 2007년 3월 말부터 콩고 내전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콩고 내전이 평화적으로 끝날 기미를 보인 것은 로렌트 카빌라가 암살당하고, 그의 아들 조셉 카빌라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부터다.

 

한편 2006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40년만에 민주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당선자는 조제프 카빌라. 그러나 그 역시 최근에는 부정선거 이야기가 나오는 등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2007년 수도 킨샤사에서 카빌라 대통령과 벰바 부통령의 무력 충돌이 있었던 등 정치적인 상황 역시 아직 불안정하다.  그러나 2019년 대선에서 패했다.

 

2012년 M23이라는 반군 세력이 들고 일어나 콩고 동부 지역을 장악했고 우간다의 반군인 ADF(우간다 반군)가 계속해서 소규모 민간인 학살을 감행하고 있는 등 아직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콩고 내전은 단순히 군대라는 물리력이 충돌하는 고전적인 분쟁이 아니다. 금, 다이아몬드 등 콩고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둘러싼 이해관계, 정부군과 반군에 따로 줄을 댄 외국기업인들, 이권을 노린 외세의 개입 등으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내전의 근본적인 핵은 콩고의 지하자원이다.

 

현재도 콩고 민주 공화국은 이웃한 우간다, 부룬디, 르완다의 군대가 반란을 도와 이 나라의 동쪽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CNDP : 투치족이 중심이 된 국민방위민족회)

FDLR : 후투족이 중심이 된 르완다해방민주세력(FDLR) 간 분쟁

 

M23 : 2009년 이후 CNDP는 2014년 FDLR이 해체되고 콩고민주공화국 정규군으로 통합됐다. 하지만 2012년 CNDP 잔당 중 일부가 정규군에 통합된 2009년 3월23일을 기해 M23이라는 무장조직  결성했으나 2013년 말 M23은 해체.

 

 

 

제1차 콩고 위기
 제1차 콩고 전쟁, 1996년 10월 24일 - 1997년 5월 16일
제 2 차 콩고 전쟁/1998년 8월~2003년 7월
2차 콩고 전쟁 참여국을 표시한 지도

 

키부 분쟁 / 광물 콜탄을 둘러싼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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