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역사적으로 파르티아및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던 민족이며 이란고원을 중심으로 파키스탄에서 터어키의 쿠르드,타지크,오세티아까지 이란 외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이슬람을 믿는 시아파의 종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아랍과는 종교,민족적으로 확연히 구분되어지는 민족이며 이란 영토내에도 다양한 민족들이 존재한다.
최근의 역사는 팔레비 왕조이후 호메이니 주도의 이란혁명은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정치체제로 변화되는 결과를 낳은 사건이다(사실상 신정 체제). 혁명이후 중동에 대한 이슬람 혁명 파급을 두려워한 사담 후세인이 1980년 9월 22일 이란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생 하였다.이란과 이라크는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이나 이란은 그 중 80% 이상이 시아파이고,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로 2등분되어 있으나 전통적으로 수니파가 상대적으로 다수인 시아파를 지배해 옴으로써 양국은 과거부터 종파적 갈등을 겪고 있었고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성공으로 강경 급진 세력인 시아파가 집권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격화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제각기 이슬람 정통의 계승과 페르시아 왕국의 상속자임을 자처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3개 도서(島嶼)와 샤트알아랍 수로(水路)의 영유권을 주장, 분쟁을 겪어오고 있었다.
초기 이라크가 서방의 지원으로 유리하였으나 호메이니의 신권적 지도하에 광신적 급진 이슬람주의에 기초한 이란 국민의 영웅적 저항은 정규군·혁명수비대·민병대의 반격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의 변화로 나타났고, 1년 이내에 끝나리라던 예상과 달리 8년 동안에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3천억 달러 이상의 전쟁 비용이 투입되는 미증유의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전쟁은 결국 8년을 끌다 유엔의 중재로 1988년 8월22일 끝났다. 양국에서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와 5000억달러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다. 1990년 양국은 1975년 협정대로 국경선을 정하기로 하면서 국교를 회복했지만 샤 트 알 아랍 수로를 둘러싼 충돌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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