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페르시아 계보

frog.ko 2020. 11. 29. 18:06

이란인이라 불리는 인도·유럽어족의 일파는 기원전 2000년경에 중앙아시아에 출현했다. 그들은 기원전 1000년경에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동부인 오늘날의 이란 지방에 이르렀으며, 그곳에 정착하여 고대 오리엔트 문화를 흡수했다.

 

기원전 7세기에는 이란인의 일파인 메디아인들이 아시리아로부터 독립하여 국가를 세웠다. 그들은 카스피해에서 도나우 강 유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던 스키티아인들을 격파하고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지배하였다. 마침내 메디아 왕국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자그로스 산의 동쪽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이 왕국은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루지는 못하였고 혈연관계에 의해 중앙권력과 연결된 속주들이 합해진 연방체였다.

 

기원전 612년에 이르면 메디아 왕국은 아시리아를 붕괴시키기 위해 바빌론과 연합할 정도로 그 위세를 떨치게 된다. 아시리아 제국의 붕괴 후, 메디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을 차지하였다. 따라서 메디아 왕국의 경계는 중앙아시아에서 리디아 왕국과의 경계인 소아시아의 할리스 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메디아 왕국의 아스티아게스 왕은 이에 만족지 않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장악하려 들었다. 신바빌로니아의 나보니두스 왕은 아스티아게스의 신하이자 손자로서 지금의 이란 남부 지방을 통치하고 있던 아케메네스 왕가의 키루스와 동맹을 맺고 메디아 왕국에 대항했다.

 

결국 아스티아게스 왕은 기원전 559년 키루스에 의해 축출되었고, 왕국의 지배권은 아케메네스 왕가로 넘어가 페르시아 왕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인과 메디아인은 근본적으로 같은 아리아 민족이었으므로 국명과 지배 세력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었다.

여세를 몰아 키루스 왕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방 전체를 통합하려는 대정복사업에 착수하였다. 처음에는 소아시아에 있는 리디아를 정복하였고, 점차 소아시아 해안 지대인 그리스 도시들을 수중에 넣었다(기원전 540년).

 

그 후에도 그는 오리엔트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하여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으로 진격하여 과거에 그를 도와주었던 나보니두스 왕을 폐위시켰다. 그러나 키루스 왕은 아시리아의 멸망이 남겨준 교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이 정복한 영토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관대한 정책을 펼쳐 그들의 관습과 신앙을 지켜주었다. 그가 헤브라이인과 그밖의 다른 민족들로부터 해방자로 간주되었던 것도 그의 관용정책 때문이었다.

 

키루스 왕이 이집트 정복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하자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선왕의 뜻을 이어받아 왕위에 올랐다. 새 왕은 이집트를 정복하여 페르시아 왕국에 병합시키고 자신은 이집트 제27왕조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에 머무르는 동안에 본국 페르시아에서는 왕위를 찬탈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자신이 진두지휘한 이디오피아 원정도 실패하자, 비관한 캄비세스 2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왕위 찬탈사건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이 왕이 된 사람이 바로 후에 그리스와 일대 전쟁을 벌인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년)였다. 그의 치세 때에 페르시아 제국은 인도에서 트라키아에 이르는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당시에 페르시아를 물리친 것은 오로지 그리스뿐이었다.

기원전 10세기 의  고대 근동,   신 아시리아 제국 이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지배하기 전

메디아(기원전 728년 - 기원전 550년)

'페르시아'(아케메네스 왕조 BC 550년 – BC기원전 330년)

아키메네스의 창건자 키루스 대왕이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시한다.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바빌로니아 제국을 물리침으로써 최고로 강한 나라에 이르게 된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에 키루스 원통이라는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1879년에 발견되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시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 수 있으며 노예제를 금지하며 궁궐을 짓는 모든 일꾼은 급여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키루스의 아들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병합한다. 제국의 영토는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 최고의 영토가 된다. 아케메네스의 영토는 인더스강에서부터 유럽에 이르렀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중국을 제외한 그 당시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문명세계를 통일하였다.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 때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가 격돌하는데 이를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으로 부른다. 잘 알려진 아테네의 마라톤 전투와 스파르타 300명이 나라를 지켜냈던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은 아케메네스 제국과의 전쟁이야기이다.

셀레우코스 제국(BC 323년-BC 60년)

건국 직후의 영역으로  안티고노스 왕조 (분홍색)를 나누기 이전

기원전 312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존속했던 서아시아 일대의 헬레니즘 계열 제국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디아도코이 중의 하나였던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창건하였다. 수도인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시리아 일대에 핵심 기반을 두고 있었으므로 시리아 왕국이라고도 한다.

 

헬레니즘 제국의 소아시아, 시리아, 페르시아 영토를 거의 모두 차지했으나 이집트의 경쟁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자주 시리아 전쟁을 벌여 국력을 소모하였고, 각지에서 반란과 독립이 빈발하여 영토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서쪽에서는 로마, 동쪽에서는 파르티아에게 영토를 빼앗겨 기원전 2세기 말에는 시리아의 소국으로 전락하였고, 기원전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해 멸망하여 로마 제국의 시리아 속주로 편입되었다. 

파르티아(BC 247년 ~ AD 224년)

기원전 200년 무렵 셀레우코스 왕조와 파르티아의 영역

기원전 247년부터 기원후 224년까지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한 왕조. 전성기의 영토는 서로는 시리아, 동으로는 인도 북부에 달했다. 이란 북부의 유목민 부족들이 주도 세력이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칭하였다.

 

초창기의 중심지는 현대의 이란 북부와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지역이었으며, 영토가 남서쪽으로 확장됨에 따라 그 중심지도 계속 이동하였다. 최종적으로는 현대의 이라크 일대와 이란 서부가 중심지가 되었다. 2세기 말부터 강성해지기 시작해 서방에서 제국을 이룬 로마와 대립하였다. 로마와 동양 사이에 위치한 입지를 활용하여 비단길의 중개무역으로 번영을 누렸지만, 로마와의 전쟁에서 연패하여 국력이 점차 쇠잔하던 와중에 파르스에서 반란을 일으켜 사산 왕조를 세운 아르다시르 1세에 의해 멸망했다.

사산 왕조(226년 – 651년)

사산 왕조란 224년에 건국돼 651년 멸망했던 400여 년간 지속됐던 이란 제국과 그 지배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산 가문의 아르다시르 1세를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건국되었다. 건국된 직후 파르티아계 아르사케스 왕조를 멸망시켜 서아시아의 패권국이 되었고, 수백 년 동안 지중해를 지배하던 동로마 제국과 함께 서반구를 양분하는 강대국으로 군림했으나 7세기 초 아라비아에서 발흥한 아랍 이슬람 세력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옴미아드 칼리파국(661년 ~ 750년)

후옴미아드 왕조 

옴마이드 왕조가 멸망하고 아바스 왕조를 세운 아바스는 옴미아드 왕조의 왕족들을 불러들여 모두 죽였다. 하지만 10대 칼리파 히삼의 손자 압드 알 라흐만은 운좋게 탈출하여 당시 옴미아드의 영토였던 현재의 스페인의 코르도바로 피신해 그곳의 지배자(에미르)가 되었다.

이를 후우마이야 왕조라고 한다.8대 아브드 알 라흐만 3세 치세에 정식으로 칼리파를 칭하고 왕조는 최전성기에 달했다. 11세기에 이르러 국력이 쇠퇴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알 안달루스 전역이 여러 개의 소국(타이파)으로 분열되었으며 1031년 마침내 멸망하면서 옴미아드 왕조는 완전히 단절된다.

 

아바스 칼리파국(750년 ~ 1258년)

아바스 칼리파국은 아랍 제국의 두 번째 칼리파국이다. 750년 우마이야 칼리파국을 무너뜨리고 건국되었다중세 이슬람의 황금시대이다. 우마이야 왕조에 이은 이슬람의 2번째 세습 제국이며 이라크 일대가 중심지였다.

 

이 시기부터 페르시아 인들이 이슬람 세계의 핵심 계층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애초에 아바스 왕조가 페르시아 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워졌기때문에 그들의 입김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세기부터 튀르크 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9세기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하나피, 무타질라 학파가 득세하며 이른바 이슬람 황금기라 불리는 문화적 번영기를 구가했으나 10세기부터는 시아파 제국들의 융성과 지방 왕조들의 독립과 함께 쇠퇴하였다.

 

이후 부와이, 셀주크 왕조의 꼭두각시가 되어 정치적 실권을 상실했으며 12~13세기에 이라크 일대의 지배력을 회복하며 부흥하는 듯하였으나 1258, 몽골 제국군에게 바그다드가 함락되며 사실상 멸망하였다.

 

이후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그 친척을 옹립하여 칼리파 계보가 이어졌지만 명목상의 지위에 불과했으며 1521년에 카이로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황제 셀림 1세가 마지막 아바스 칼리파로부터 선양을 받아 완전히 종말을 고하였다

호라즘 제국(1077년 ~ 1231년)

호라즘 지역에서 발원했으므로 호라즘 왕조라고 한다. 왕가는 튀르크계 굴람(맘루크) 출신이었으며, 행정 체제와 사회 문화는 페르시아식이었다. 원래 셀주크 제국의 일부였으며, 셀주크 세력이 카라 키타이에 패망한 이후에는 카라 키타이가 건국되었다. 1160년대 이후 1190년대에 셀주크 제국의 장군이 이란 지역을 장악했으며, 1200년대에는 고르 왕조와 카라한 왕조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트란스옥시아나, 아프가니스탄 지역까지 정복하여 동부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 제국에 멸망하였고, 호라즘 왕조의 튀르크 귀족들은 몽골 귀족에 편입된 후 몽골 제국의 유럽 및 중동 침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일한국(1256년 ~ 1335년)

티무르 제국(1370-1507)

사파비 왕조(1507년 – 1722년)

사파비 왕조는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하며 점차 성장해 가다가 오스만투르크의 팽창으로 인해 더 이상 확장하지 못했다.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교를 종교로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큰 시아파의 나라가 되며 오늘날 이란의 시아파로 이어지고 있다.

 

호타키 길자이 왕조(Hotaki Ghilzai dynasty: 1722년 – 1729년)

아프샤르 왕조(1736년 – 1796년)

잔드 왕조(Zand dynasty: 1750년 – 1794년)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1781년 – 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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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비 왕조(Pahlavi dynasty: 1925년 – 1979년)

고대사(이슬람 도래 이전)

엘람 왕국 (3000 BC? - 550 BC) 메디아 왕국 (728 BC - 550 BC) 아케메네스 왕조 (559 BC - 330 BC) 마케도니아 왕국의 정복 (334 BC - 330 BC, 헬레니즘 제국) → 셀레우코스 왕조 (330 BC - 63 BC, 150 BC 이후 페르시아 상실) 아르사케스 왕조(파르티아) (248 BC 226) 에란샤 왕조 (226 651)

 

중세사(이슬람 도래 이후)

아랍 이슬람 세력의 정복후, 이슬람 제국하의 정통 칼리파 시대 (637 - 651)

우마이야 왕조 (661 - 750)

압바스 왕조 (750 - 1258, 9세기 이후 페르시아 상실)

 

◈이란계 소왕국들 타히르 왕조 (821 - 873) 사파르 왕조 (861 - 1003) 사만 왕조 (875 - 999) 데일람 알라비 왕조 (864 - 928) 데일람 지여르 왕조 (928 - 1043) 부이 왕조 (934 - 1062)

튀르크 도래 이후

가즈나 왕조 (963 - 1187)

셀주크 왕조 (1037 - 1194) - 룸 술탄국

호라즘 왕조 (1077 - 1231)

몽골 제국의 정복 (1220 - 1258)

일 칸국 (1258 - 1335)

티무르 왕조 (1370 - 1506)

흑양 왕조 (1407 - 1468)

백양 왕조 (1378 1508)

 

근세사

사파비 왕조 (1502 - 1736)

잔드 왕조 (1750 - 1794)

아프샤르 왕조 (1736-1796)

 

근대사

카자르 왕조 (1781 - 1925)

팔라비 왕조 (1925 - 1979)

이란의 소수 민족
Iranian Lang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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