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강은 유럽에서 가장 긴 강으로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400km정도 떨어진 노브고로드주의 발다이 구릉의 해발 228m에서 발원하며 그 유역면적은 동쪽으로 우랄산맥까지 이른다.
고대에는 '라', 중세에는 '이틸' 또는 '에틸'이라고 불렸던 이 강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역사가 이어져왔다. 볼가 강 유역은 유럽권 러시아의 1/3을 차지한다.
발원지에서 하구에 이르기까지 약 200개의 지류가 볼가 강으로 흘러드는데 그중 대다수가 왼쪽으로 유입된다. 볼가 하계망은 15만 1,000개의 강들과 영구·간헐 하천들로 이루어졌으며 총길이는 57만 1,200㎞이다.
상류는 북동쪽으로 흘러 습지와 호수, 숲과 저수지가 흩어져 있는 지역을 지난 후에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다닐로프 고원과 우글리치 고원 사이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흐른다. 니즈니노브고로드에 이르러서는 서쪽에서 흘러오는 지류 오카강을 만나면서 수량이 많아지며 강의 크기가 훨씬 커지게 된다.
볼가강은 남동쪽으로 계속 흘러 카잔에 이를 때까지 습한 삼림 지대를 통과한 후에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서서히 건조한 경관을 만나게 된다. 카잔을 지나면서 동쪽의 볼가 구릉지대와 투르가이 고원을 흘러온 지류 카마강과 합류한다.
중류 구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사마라에서 강이 160km의 길이로 잔구성 산지를 따라 크게 곡류하는 것이다. 볼고그라드에 이르러서는 강은 본류인 볼가강에서 아후투바강이 나뉘어 평행하게 흘러 카스피해 저지대의 아스트라한까지 흘러 넓은 삼각주를 지나 해수면보다 30m 낮은 카스피해에 유입한다.
9세기에서 10세기에 바이킹의 일파인 바랑기아인 또는 바랑인이 주로 동쪽 및 남쪽으로 이주하여 지금의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일대에 정착했다.
해적·침략 행위 뿐만 아니라 발트 해·북해의 교역에 종사한 바랑기아인은 발달된 항해술로 강을 타고 흑해로 들어가서 남쪽의 경제적으로 번영한 동로마 제국과 교역에도 나섰고, 또 이슬람 제국의 교역도 활발히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두 개의 교역 루트를 통해 동쪽 슬라브 사람들은 튀르크인과 바랑가아인의 영향권에서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주로 상업, 노략질, 방랑민으로 활약했으며 카스피해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살았다. 바이킹은 주로 볼가 강을 통해 동방과 교역을 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발굴되는 바이킹 무덤의 부장품에 8세기경 인도 동북부에서 제작된 불상, 이슬람 동전 등 수천 점의 동방의 물품이 같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의 동방 교역을 연구한 결과, 볼가 강을 따라 카스피 해를 지나서 지금의 이란에 도달하는 바이킹의 교역로가 밝혀졌다.
볼가 강의 지정학적 가치가 바이킹의 무역로 역할을 통해 러시아의 정체성인 류리크 왕조를 탄생시킨 것이다.
류리크 왕조의 시조인 류리크는 여러 신화에서 스웨덴 출신의 바이킹으로 전해진다. 류리크의 후계자 올레크는 아시아계 유목민들로부터 키예프를 정복하고, 키예프 공국을 세워 발전시켰다.
류리크 왕조는 862년에서 1240년까지 키예프 루스의 왕가로 군림하였으며,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키예프 루스는 붕괴되었다. 1283년에 류리크 왕조 출신인 다닐 알렉산드로비치에 의해 새로운 루스 공국인 모스크바 대공국이 등장하였으며 러시아의 뿌리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지역의 루스 공국인 갈리치아-볼히니아 대공국은 12세기-13세기에 번영하였지만 14세기 무렵 왕가의 단절로 인하여 벨라루스 지역의 루스 공국인 폴라츠크 공국과 함께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합병되었다. 이후 류리크 왕조는 1610년 동란 시대까지 러시아 지역의 러시아 차르국을 다스렸으며, 동란 시대 이후에는 로마노프가로 왕조가 교체되었다.
러시아 왕조계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원형인 중세의 루스 지역은, 862년에 노르만인 루리크가 노브고로드의 공이 되어, 그 일족이 동쪽 슬라브인의 거주지역에 지배를 펼쳐 가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키예프 공국은 9세기에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동방 정교회와 비잔틴 문화를 수용해서, 독특한 문화를 이룩하였으며, 동슬라브족은 10세기에 키예프 공국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13세기초에 몽골에 의해서 정복되어 킵차크 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키예프 루시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모스크바 대공국(1340년~1547년)은 몽골 지배하에서 루시가 한(汗)에 납부하는 세금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고, 나중에 점차 실력을 길러서 15세기에 킵차크 한국의 지배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이반 3세(재위 1462년~1505년) 때 루스 전역을 통일하게 되고, 차르의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초에는 로마노프 왕가의 러시아 제국(1613년~1917년)이 수립되었다.
류리크 왕조
류리크 왕조는 862년에서 1598년까지 키예프 루시를 지배한 왕조였다. 창시자는 노르만계의 류리크였다. 862년에서 몽골이 키예프 공국을 멸망할 때까지의 1240년은 키예프 공국의 지배자로 지냈다.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류리크계의 왕들은 노브고로트로 피신했다. 1480년 이후에는 모스크바 공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1598년에 표도르 1세가 죽은 뒤, 그 다음부터는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었다.
1대. 이반 1세 (1325~1341) – 2대. 세메온 1세 (1341~1353) - 3대. 이반 2세 (1353~1359) - 4대. 드미트리 돈스코이 (1359~1389) - 5대. 바실리 1세 (1389~1425) - 6대. 바실리 2세 (1425~1462) – 7대. 이반 3세(1462~1505) – 8대. 바실리 3세 (1505~1533) - 9대. 이반 4세 (1533~1584) – 10대. 표도르 1세 (1584~1598)
로마노프 왕조
1대. 미하일 1세 (1613~1645) - 2대. 알렉세이 1세 (1645~1676) - 3대. 표도르 3세 (1676~1682) - 4대. 이반 5세 (1682~1696) - 5대. 표트르 1세 (1682~1721)
- 6대. 예카테리나 1세 (1725~1727) - 7대. 표트르 2세 (1727~1730)
- 8대. 안나 (1730~1740) - 9대. 이반 6세 (1740~1741) - 10대. 엘리자베타 (1741~1762) - 11대. 표트르 3세 (1762) - 12대. 예카테리나 2세 (1762~1796) - 13대. 파벨 1세 (1796~1801)
- 14대. 알렉산드르 1세 (1801~1825) - 15대. 니콜라이 1세 (1825~1855) - 16대. 알렉산드르 2세 (1855~1881) - 17대. 알렉산드르 3세 (1881~1894) - 18대. 니콜라이 2세 (1894~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