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남쪽 대서양 연안에 벨리즈(Belize)라는 나라가 있다. 면적은 2만여㎢로 대한민국의 4분의1 정도이고, 인구는 38만명 남짓의 소국이다.
기후는 고온다습한 아열대성 기후이며, 사탕수수를 비롯하여 바나나·감귤류·엽연초 등 농업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블루홀이라는 거대한 구멍이 바다에 나있어 오늘도 수많은 다이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나라는 멕시코, 온두라스, 과테말라 등 과거 스페인 식민지들에 둘러 싸여 유일하게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무려 100년 영국의 식민지 기간을 거쳐 독립해, 1981년 9월 25일 유엔에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다.
벨리즈는 원래 마야인들의 땅이었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하고 마야문명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벨리즈의 고대 문명도 사라졌다. 스페인 점령자들은 이 곳에 거주하거나 병력을 주둔시키지 않았다. 자원이 없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원주민들의 공격성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 틈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해적들이 벨리즈 근처에 소굴을 만들어 들락날락했다. 이른바 캐리비안 해적들이다. 스페인은 영국인들을 침입자로 간주했다.
1634년 피터 월리스(Peter Wallace)라는 영국인 선장이 벨리즈에 도착했다. 벨리즈라는 나라이름도 월리스(Wallace)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38년엔 영국인 정착촌이 개척되었다.
영국인 정착인들은 이 곳에 서식하는 로그우드(logwood) 나무가 염색 소재를 추출하는데 활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국인들은 이 곳에 흑인노예를 데리고 와서 로그우드 벌채를 해서 돈을 벌었다.
그러자 스페인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은 한때 경제성이 없다고 버려두었던 땅에서 수익성이 창출되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면서 영유권을 주장했다. 1779년 스페인군이 세인트 조지 카예의 영국인 정착촌을 공격했지만 패했다. 이 후 영국은 중앙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이곳을 식민지로 차지하게 되고, 1787년 영국 정부가 임명한 최초의 관리가 도착했다.
19세기 들어 라틴아메리카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운동이 거세게 불면서 스페인은 벨리즈 영유권을 주장할 틈이 없었다. 1821년 멕시코를 비롯해 중앙 아메리카 국가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1859년에는 영국과 신생독립국 과테말라가 영국령 온두라스의 경계를 확정했지만, 과테말라는 그 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1871년 영국은 벨리즈를 ‘영국령 온두라스’(British Honduras)라고 이름 짓고, 식민정부를 수립했다.
멕시코는 영국령 온두라스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고 평화조약에 서명했지만, 과테말라는 영국정부와 단교를 하면서 자기네 땅이라고 권리를 주장했다.
1964년 영국령 온두라스는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영국령 온두라스는 수도를 카리브 해 연안의 '벨리즈시티‘(Belize City)에 두었는데, 바다에 접해 있어 허리케인으로 수해를 자주 겪어 1972년 수도를 내륙의 벨모판(Belmopan)으로 이전했다.
1973년 벨리즈는 국명을 영국령 온두라스에서 ‘벨리즈(Belize)’로 개칭하였다.
영국은 1981년 벨리즈를 영연방 국가로 독립시켰고, 그해 9월 25일 유엔은 벨리즈의 회원국 가입을 승인했다. 1991년 벨리즈는 미주기구(OAS)에 가입하고 1993년 영국군이 완전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