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는 남아시아에 있는 인민 공화국으로서 인도, 미얀마 그리고 벵골 만에 인접해 있다. 인도의 서벵골 주와 더불어 벵골어를 쓰는 지역에 속한다. 국명 방글라데시는 벵골어로 "벵골의 땅" 또는 "벵골의 나라"를 뜻한다. 주요 도시로는 다카, 치타공, 실렛, 마이멘싱 등이 있다.
현재 방글라데시는 벵골 지방의 동쪽에 해당한다. 기원전 4세기 마우리아 왕조부터 6세기 굽타 제국까지 수많은 왕조의 속령이었다. 불교 사원에서 기원전 7세기에 문명이 존재했음이 입증된 이 사회 구조는 기원전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측되지만 확실한 증거는 뒷받침되지 못했다. 초기 문명은 불교와 혹은 힌두교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북부 방글라데시에 남아있는 유적에서 이러한 영향을 추측할 수 있다.
8세기 중엽에 팔라 제국이 세워졌고, 불교 왕조가 번영했다. 1000년경 무슬림들은 벵골 지역에 있는 힌두와 불교 왕국을 침략하여 왕권을 장악하였다. 또한 이들은 벵골 동부의 대다수 주민을 무슬림로 개종시켰으며, 서부 벵골지역에도 소수 무슬림 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로부터 이슬람은 이 지역의 역사와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2세기에는 힌두계의 세나 왕국으로 대체되었으며, 13세기에 접어들어 이슬람으로 바뀌었다.
16세기에는 무굴 제국이 성립하여 상공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1세기 세나 왕조에서 16세기 (무굴 제국에 편입된 1574년) 동안 벵골어가 발달했다. 이 무렵, 벵골 경제 성장에 따라 밀림이 많았던 동벵골 개발이 시작되어 이슬람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되어 갔다. 16세기 후반에 동벵골에서 무슬림이 다수파가 되어 갔다. 또한 17세기 중반에는 무슬림 농민 집단이 눈에 띄게 급증하였다.
19세기 후반 영국 지배하의 인도에는 애국운동이 펼쳐졌으나 이로 인하여 힌두교와 무슬림 사이에 적대관계가 형성되었다.
영국령 인도는 1947년 독립을 달성했지만, 종교 문제로 인해 힌두교 지역은 인도, 이슬람 지역은 인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뉜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동벵골(1947년 - 1955년)은 파키스탄에 참여를 결정했다.
두 개의 파키스탄이 성립하면서 현재 방글라데시 지역은 동파키스탄이 되었다. 양 지역간 인구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지만, 경제와 문화 등이 크게 달랐으며, 또한 인도에서 1000 km 이상 떨어진 국토였다. 이 차이는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문제가 일어난 것은 언어의 차이였다. 벵골어로 거의 통일된 동파키스탄과는 달리, 서파키스탄은 우르두어 공용어화를 결정했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것은 벵골어와 우르두어의 공용어화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 우세한 서파키스탄에 치우친 정책이었다. 1970년 12월 선거에서 인구가 많은 동파키스탄의 아와미 연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서파키스탄 중앙 정부는 의회 개회를 연기한 후, 1971년 3월에는 군이 개입하여 동파키스탄 수뇌부를 구속하였다.
이것은 동서 파키스탄 대립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으며, 동파키스탄은 독립을 시도하여, 서파키스탄(현재의 파키스탄)과 내란이 벌어지면서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서파키스탄과 대립하고 있던 인도가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지지하였고, 또한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인도의 승리로 끝나자,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을 거쳐 1971년에 방글라데시의 독립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