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 북동부, 푸에르토리코에서 300km 가량 동쪽에 떠있는 섬. 1648년 이래로 북부의 프랑스령 생마르탱과 남부의 네덜란드령 신트마르턴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섬의 중앙에는 국경선이 그어져 있으며 남쪽 절반 네덜란드령을 영어로 Dutch Side라고 부르고 북쪽 절반 프랑스령을 French Side라고도 부른다.
98㎢ 크기로 대략 경기도 하남시와 비슷한 수준이며 세인트마틴 섬에는 프랑스령에 3만 6천여 명, 네덜란드령에 4만여 명으로 인구는 강원도 속초시보다 약간 적은 77,741명이 거주한다(2009년 기준).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섬을 발견하여 이 섬에 '산 마르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스페인은 이 섬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이 섬에 주목했다. 스페인이 카리브 해의 지배력을 상실하고 섬을 완전히 포기한 이후, 두 국가는 각자 섬의 식민지화를 시작하여 분쟁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1648년 '콩코르디아 조약'을 통해 섬을 양분하였으며 1815년 '파리 조약'을 통해 오늘날의 경계선을 확정하였다.
지도를 보면 대략 프랑스령이 60%, 네덜란드령이 40%다. 1648년에 국경을 정할 때, 프랑스군은 와인을 마시고 북쪽 해안에서, 네덜란드군은 진을 마시고 남쪽 해안에서 서로 섬 내륙을 향해 달려, 양측이 만나는 선을 국경으로 하기로 했는데, 와인보다 진의 도수가 더 높아 상대적으로 네덜란드군이 몸을 더 못 가눴기 때문에 프랑스가 더 많은 땅을 차지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섬은 1493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산 마르틴 섬(스페인어 : Isla de San Martín)이라고 명명되었지만, 스페인은 이 섬을 식민지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섬에 주목을 한 것은 프랑스와 네덜란드 였다. 프랑스인들은 트리니다드와 버뮤다의 중간에 본사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1630년에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잇따라 섬에 와서 처음에는 해적의 은신처로 사용되고 있었다.
1633년, 스페인이 네덜란드에서 섬을 장악하고 기존 정착민의 대부분을 추방하였다. 스페인은 네덜란드의 탈환 시도를 물리쳤으나, 다른 한편으로 거점 사업에 대한 관심을 잃고 30년 전쟁의 종결과 함께 섬을 포기했다.
공백지로 바뀌면서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다시 식민지화하려고 했다. 프랑스는 세인트 키츠에서 네덜란드는 신트외스타티위스(Sint Eustatius) 섬에서 각각 식민지인을 섬에 보냈다. 이 과정에서 충돌도 발생하고 상대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쌍방은 전면전에 돌입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1648년에 콩코르디아 조약(Treaty of Concordia)에 서명하여 섬을 양분 하였다. 무엇보다, 그 후도 영토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1648년부터 1816년까지 변경지역은 16번 분쟁이 발생 하였다. 현재 경계선이 확정 된 것은 1815년의 파리 조약이다.
이 섬에는 아프리카에서 많은 노예가 들어왔다. 먼저 섬에 노예를 데리고 온 것은 스페인인들이었지만, 설탕 플랜테이션이 확대되면서 노동에 종사하게 된 노예의 수는 크게 늘어났다. 1848년 7월 12일, 프랑스 측에서 노예제를 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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