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하지야는 서아시아 흑해 연안,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에 끼어있는 지역으로, 세계 대부분 국가의 정부와 UN에서는 조지아의 영토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따로 차려져 통치 중인 미승인국이며 조지아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해 통치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는 수후미(Sukhumi)이다.
역사고대에는 콜키스 왕국에 속했고, 이후 동로마 제국에 의해 임명된 아르콘이 다스리는 '아바스기아(Abasgia)'가 세워졌다. 8세기에는 압하지야 왕국이 세워졌다가 11세기에 압하지야의 왕인 바그라트 3세가 다비트 3세 쿠로팔라티의 뒤를 이어 조지아의 왕위를 계승해 조지아와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조지아를 차지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충성한 샤르바시제가가 압하지야 공국을 다스렸다. 19세기에 압하지야 공이였던 미헤일 샤르바시제(მიხეილ შარვაშიძე)가 추방당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이후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압하지야 지역에 자치권이 부여된다.
소련이 들어선 이후 압하스인인 네스토르 아폴론이파 라코바(Нестор Аполлон-иԥа Лакоба)[8]의 주도로 압하지야 SSR가 수립됐으나, 1931년에 그루지야 SSR의 자치공화국으로 격하되었다. 당시 그루지야(조지아) 출신이었던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라브렌티 베리야는 압하스어 문자를 조지아어 문자로 바꾸는 등 압하지야 문화에 대한 탄압을 가했으며, 1926년 압하지야에서 조지아인과 압하스인의 비율은 각각 33%, 27%로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1959년에는 조지아인(39%)이 압하스인(15%)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다. 50년대 이후 소련 정부는 압하스인에 대해 유화 정책을 폈으나, 이번에는 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는 조지아인이 이에 대해 차별받는다는 불만이 생겼다.
소련 붕괴 이후 압하스인들은 조지아에서의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조지아인들은 이에 반대하면서 충돌이 커졌다. 1991년 조지아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 1992년 7월 23일 압하지야 최고회의의 결정에 따라 압하지야는 조지아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나섰다. 결국 압하지야-조지아간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특히 89년 당시 압하지야 인구의 45%까지 늘어났던 조지아인의 경우 3만여 명이 학살당하고 20만여 명이 쫓겨난 것으로 추산된다.
1994년 5월 14일에 러시아의 중재로 모스크바에서 준군사조직 므헤드리오니의 지도자인 자바 이오셀리아니와 압하지야의 총리인 소크라트 진졸리아가 만나 휴전협정을 성사시키면서 내전은 일단락되었고 압하지야는 사실상 독립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