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왕국는 1795년부터 1893년까지 지금의 미국 하와이주 일대에 존재했던 왕국이다.
하와이 왕국은 카메하메하 1세 대왕이 하와이 제도의 다른 부족 국가들을 모두 정복하고 세운 나라이다. 1778년에 제임스 쿡 선장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카메하메하 1세는 당시 그가 속해있던 부족의 추장이던 할아버지 칼라니오프의 명을 받아 쿡 선장을 만났고, 그에게서 영어를 배우고 영국의 많은 유용한 기술을 익혔다. 제임스 쿡의 부하와 원주민 간 분쟁으로 인해 제임스 쿡 선장이 전사하고, 영국인 선원들이 패퇴했지만, 카메하메하는 그의 장례를 하와이 전통방식에 따라 정중히 치르고 그리고 포로로 붙잡힌 영국 선원들을 군사 고문으로 임명해 유럽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리고 추장이 되자마자 유럽에서 사온 무기로 정복사업에 나서 하와이 전역을 통일한다.
카메하메하 1세는 부족 국가들을 정복하고 하와이의 관습법과 영국의 성문법을 결합한 법을 제정하였다.
카메하메하 1세가 죽자 그의 아들 카메하메하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의 치세에 첫 기독교 선교사가 도래하였으며, 이 때 카메하메하 2세는 영어 로마자를 받아들여 하와이어 로마자를 만들고 교육하였다. 그는 왕비와 함께 영국을 방문해 조지 4세와 회견하여 동맹을 맺고자 하였으나 영국에서 홍역에 걸려 얼마 못 가 죽었다. 1824년에 그의 왕위는 동생 카메하메하 3세가 계승했다.
1840년에는 카메하메하 3세의 주도 하에 헌법이 제정되어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1843년에는 미국, 프랑스, 영국 등으로부터 독립국으로 승인되었다.
1873년에는 카메하메하 5세가 아들 없이 죽자 국왕 선거를 통해 루날릴로(Lunalilo)가 왕이 되었으나 얼마 못 가 죽었고, 다시 선거를 통해 1874년에 칼라카우아(Kalākaua)가 즉위했다. 이 때 경쟁자였던 카메하메하 4세의 부인 엠마(Emma)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미국과 영국의 힘을 빌려 진압했다.
하와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있어서 당시 태평양을 항해하던 서구 국가들과 많이 접촉했는데, 앞서 영국의 간섭도 있었고, 러시아 제국도 1814년부터 1817년까지 엘리자베스 포트항구를 소유했다. 미국에서도 많은 이민자가 와서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힘이 점점 커져서 하와이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되자 위기를 느낀 역대 하와이 왕들은 영국, 일본 등 열강에게 미국을 견제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 중에서 일본에게는 보호령 편입을 청하였다. 실현되었다면 태평양 절반이 일본령이 되는 일이 일어났을 터이지만 당시 자기 몸 건사하기 힘든 일본은 영미에게 오가사와라 제도 영유만 승인받고 무시했다.
1887년에는 샌퍼드 밸러드 돌(Sanford Ballard Dole)을 비롯한 미국계 이민자들이 무력으로 들고 일어나 칼라카우아 국왕을 협박해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는데 이 헌법은 미국계 이민자의 참정권을 허용했고, 이는 칼라카우아의 권력 누수로 이어졌다. 이후 칼라카우아는 아무런 실권이 없는 왕이 되었고, 1891년에 사망했다.
칼라카우아의 뒤를 이어 그 여동생 릴리우오칼라니(Liliʻuokalani)가 즉위하였다. 그는 미국계 이민자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나라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고 1892년에 새 헌법을 제정해 이들의 참정권을 대폭 제한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각료회의에서 부결되었고 이에 릴리우오칼라니는 미국인 농장 국영화 조치로 대응했다.
그러자 미국인들은 근처 미 해군 선박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그 즉시 수병 150명으로 릴리우오칼라니를 추방했다. 이로서 하와이 왕국은 멸망했다.
미국계 이민자들은 하와이의 미국 편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반제국주의자였던 그로버 클리블랜드였기에 보류되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국 자체가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한 국가라 미국이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도 다른 서구열강에 비하면 어느 정도는 있었다.
결국 왕정을 무너뜨린 하와이 거주 백인들은 자신들끼리 샌퍼드 밸러드 돌(Sanford Ballard Dole)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해서 임시로 하와이 공화국(Lepupalika ʻo Hawaiʻi)을 수립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1897년 합병조약을 체결한 뒤 하와이를 미국령으로 편입해버렸다. 그 뒤로 하와이는 하와이 준주(Territory of Hawaii)로서 한동안 현재의 괌과 비슷한 지위의 자치령이 되었다가 나중에 본토와 대등한 정식 주로 편입되어 하와이 주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와이 왕족의 후손들(직계는 끊기고 방계들만 많다)은 대부분 백인과 혼혈되어 백인 상류층과 비슷한 외모를 가졌는데 이들은 여전히 하와이 전역에 상당한 토지를 보유하고 재정적 기반과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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