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14세 요한(스웨덴어: Karl XIV Johan, 1763년 1월 26일 ~ 1844년 3월 8일)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왕(재위: 1818년 2월 5일 ~ 1844년 3월 8일)이자 스웨덴의 현(現) 왕가인 베르나도테 왕조의 시조이다. 노르웨이 국왕으로는 칼 3세 요한(노르웨이어: Karl III Johan)에 해당한다. 본명은 장밥티스트 쥘 베르나도트(프랑스어: Jean-Baptiste Jules Bernadotte)로서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육군에 일개 사병으로 입대한후 하사관을 거쳐 장교가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 초고속 진급을 통해 1804년에 원수가 되었고 끝내는 국왕의 지위에 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프랑스 남서부 베아른의 포(Pau)에서 아버지 장 앙리 베르나도트와 어머니 잔느 생-장 사이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은 변호사였으며, 그보다 여덟 살이 많은 형 역시 변호사였다. 법률가가 되기 위해 법률학교를 다녔지만 부친의 사망 후, 1780년 9월 3일 17세의 나이에 당시 이태리 코르시카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군 60연대에 사병으로 입대하여 특무상사까지 진급하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부사관과 장교 사이의 진급 장벽이 제거되자, 그는 1792년 소위로 임관한 이후 혁혁한 전공을 세우면서 초고속 승진을 계속하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겨우 왕립군의 하사관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베르나도트 같은 비귀족에게도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어줬으며 이 때문에 그는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절실하게 깨달았다. 하지만 혁명 초기, 혁명에 동참하라는 마르세유 주민들의 이야기에 자신은 군인이기에 군율에 따라야한다고 했다. 또한 시민군과 왕립군의 대립으로 귀족이었던 자신의 연대장이 체포되었을 때, 그를 구하기 위해 의회에 청원서를 쓰기까지 했고,이후 1792년부터 1794년경까지 그는 하급장교로 독일 전선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와 같이 파리에서 멀리떨어진 전선에 있던 하급 장교가 (특히 공포정치로 대표될 수 있는) 프랑스 혁명 초기의 상황에 관련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1792년 후 그는 독일전선에서 대부분을 하급장교로 복무했으며, 벨기에 전선으로 가서야 대령이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빛나는 승리인 《플뢰뤼스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기에 1794년 육군 소장이 되었고 그해 11월에는 중장까지 승진했다.
이후 베르나도트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방을 점령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1796년까지 독일 전선으로 파견되었다. 이때가 프랑스 장군으로써 베르나도트의 경력에 정점이 되는 시기였다. 1797년 봄 그는 2만 명의 보충병을 데리고 나폴레옹이 있던 이탈리아로 갔다. 이 때 처음으로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가 만났다.
1798년 8월 12일, 마르세유 상인의 딸 데지레 클라리와 결혼하였다. 데지레는 나폴레옹 1세의 옛 약혼녀였었다.
일개 병사에서 장군에까지 올라서게 된 입지적인 인물인 베르나도트는 민중들에게 인기가 있어, 한때 나폴레옹의 라이벌로 주목받았다. 자코뱅 파에서 대표자를 맡았으나, 그 자신이 결단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나폴레옹에게 권력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나폴레옹 1세의 보나파르트 가문과 혼인을 통해 인척관계( 데지레 클라리는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의 처제이기도 했다)를 맺었으며 유능한 장군이었으나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집권에 비협조적이었고 시종일관 나폴레옹 1세와는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1809년 스웨덴에서 쿠데타로 새로운 국왕이 즉위하였으나 후계가 끓어지자 그에게 스웨덴 왕위계승 제의가 들어왔다. 1810년에 차기 왕위계승권자로서 섭정이 되어 실권을 장악한후 스웨덴을 통치하다가 1818년에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스웨덴 왕국의 섭정이 된 이후에, 철저히 스웨덴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점차 나폴레옹 1세와 갈등관계과 형성되었다. 1813년 나폴레옹에게 등을 돌리고 제6차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하여 직접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그 결과 1814년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를 할양받았다. 그는 저항하는 노르웨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스웨덴과의 동군연합에 굴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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