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전쟁 24

알제리 전쟁(알제리 독립 전쟁)

알제리 전쟁은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알제리 민족 해방 전선(FLN)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알제리 입장에선 독립 전쟁이고, 프랑스 입장에선 식민지 반란군 진압 작전이었는데 1999년 6월에 프랑스 의회는 전쟁이 끝난 지 37년 만에 이것이 "전쟁"이었음을 인정하였다. 전쟁의 결과로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으며, 프랑스는 석유와 가스 등 막대한 국부를 잃고, 전쟁 중 프랑스 제4공화국이 붕괴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탈식민지화의 대세와 흐름을 무시하고 벌어졌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과 더불어 유럽 식민지 열강의 식민지 재침의 예시로 평가받는 전쟁이다. 이 전쟁은 탈식민지화에서 중요한 전쟁이었으며, 게릴라전, 민간인에 대한 테러, 양측의..

지리/전쟁 2020.11.14

멕시코의 비극 '미국-멕시코 전쟁 '

멕시코-미국 전쟁(Mexican-American War)은 1846년과 1848년 사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발생한 군사 분쟁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에는, 동부의 일부 지역에 불과했다. 이 후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추진으로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하면서 서부 팽창이 시작됐다. 당시 텍사스에는 멕시코 영토임에도 미국인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고, 멕시코가 독립을 이루면서 정치 불안을 보이는 동안 그곳의 정착민의 대다수는 미국인 이민자로 구성되어갔다. 텍사스에서 반란의 움직임이 보이자, 당시 멕시코를 통합한 산타나가 군대를 이끌고와 이들을 제압한다. 이 전투가 텍사스인이라면 다 알고있다는 알라모 전투다. 시간이 지나 마침내 텍사스는 1845년, 스스로 미국의 28번재 주..

지리/전쟁 2020.11.14

몽골군의 군사비밀

13C 몽골군은 아시아와 중동, 동유럽까지 점령했었던 강력한 군대였다. 그들이 강했던 이유는 뛰어난 장수와 전략가가 있었다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말(馬)이다. 그들이 타는 말은 아랍이나 유럽의 말에 비해 크기가 작다. 그러나 거친 몽골의 자연환경에 단련되어 타지방의 말과는 달리 강건하였고 지구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말이 뛸 때, 아랍이나 유럽 말들은 좌우의 다리가 따로 움직인다. 이는 말을 타는 기수가 피로함을 많이 느끼게 되죠. 이에 비해 몽골말 들은 두 다리가 같이 움직입니다. 이는 즉, 말을 타는 기수가 피로함을 유럽산에 비해 덜 느끼게 된다 . 그러므로 군마로서 몽골말 들은 유럽 산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몽골은 알다시피 유목 민족이다. 말이 집집마다 있었고 그들의 생..

지리/전쟁 2020.11.12

미국이 땅을 임차하는 방법..관타나모

관타나모만 해군 기지는 쿠바 남동쪽 끝부분에 위치한 관타나모만에 위치한 미국의 해군 기지로, 총 면적은 117.6 km²이다. 미국 해군이 점유한 지 1세기가 지났으며, 미국의 해외 기지 중에서도 오래된 곳이다. 또한,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미국과 정식 외교 관계가 없는(잠재적 적대 국가의) 국가 내부에 있는 유일한 미군 기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1498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 최초로 상륙한 이후 스페인의 땅이 되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 괌,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을 점령하게 된다. 이 전쟁의 결과로 쿠바는 파리 조약에 의해 독립을 이루지만, 곧바로 미군의 군정 하에 들어가게 되고 쿠바의 내정 간섭을 위한 플래트 수정안을 통해 관타나모만 기..

지리/전쟁 2020.11.10

제국의 무덤 '아프카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은 고대부터 서양과 동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곳으로 실크로드의 핵심 루트 중 하나였다. 바닷길이 열린 후에는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요충지로 변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서구 열강이 전세계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땅따먹기 싸움을 하던 제국주의 시대에 러시아 제국의 부동항 진출을 막기위해,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이 벌인 전쟁으로 9세기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영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서 있던 3차례으로 전쟁은 다음과 같다. 제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839~1842) 제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878~1881) 제3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1919) 영국군은 1820~30년경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러시아와 경쟁을 벌이게 된다. 당시 펀잡 지..

지리/전쟁 2020.11.07

카슈미르 분쟁

카슈미르 분쟁은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싸고 인도, 중화인민공화국, 파키스탄 3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 분쟁이다. 현재 인도는 잠무, 라다크, 시아첸 빙하 대부분 지역을 실효지배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카슈미르 지방은 악사이친으로, 또한 중국은 1963년에 카라코람 회랑을 통치하에 두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1947년, 1965년, 1971년 총 3번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국은 한번의 전쟁 (인도-중국 전쟁)을 겪었다. 1990 년 이후 잠무 카슈미르 주는 라슈카레타이바 등 카슈미르 분리주의자와 인도군의 충돌이 반복되어 수천 명 규모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 면적은 22만여㎢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인구는 카슈미르 서쪽지역인 파키스탄령 카슈미르가 380만명, 인도령 카슈미르(인..

지리/전쟁 2020.11.05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우루과이 독립전쟁)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영어: Argentina-Brazil War)은 1825년부터 1828년까지 시스플라티나 주의 독립 문제를 놓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시스플라티나 주가 브라질로부터 독립하고, 신생국인 우루과이가 건국됐다. 본래 우루과이는 이웃국가인 아르헨티나와 함께 한때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스페인의 남미 식민제국이 스페인령이었던 남미 각국에서 일어나던 식민지 독립운동으로 붕괴되는 틈을 노려 당시 우루과이의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호세 아르티가스를 중심으로 독립국가 건설을 시도하려고 했었으나 브라질이 무력으로 이 지역을 침공, 합병하고, 시스플라티나 주로 편입하면서 브라질의 영토로 편입되고 말았다. 그러나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아오며 언어, 역사, 문화 등 모든 ..

지리/전쟁 2020.10.30

전쟁으로 만들어진 국가, 미국

- 1776년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8년에 독립전쟁(1775~1783년)에서 미군 5만여명과 영국군 5만여명 희생자 - 19세기 말까지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영토 확장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디언 원주민 300여만명을 학살 - 남북전쟁(1861~1865년)이라는 내전에서는 60만명 웃도는 희생자 - 독립전쟁 때 프랑스로부터 빌린 전비를 갚지 않겠다고 우기며 도미니카에 해병대를 파견해 프랑스 전함을 나포했던 이른바 준전쟁(Quasi-War 1798~1800년) - 지중해의 트리폴리 왕국을 공격한 제1차 바버리전쟁(1801~1805년) - 제2차 브리티시-아메리카전쟁인 1812년전쟁(1812~1815년) - 국경선 분쟁인 멕시코-아메리카전쟁(1846~1848년):이 전쟁은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텍사..

지리/전쟁 2020.10.30

중국 속의 타이완, 금문도

1948년 가을, 린뱌오가 동북을 장악하자 장제스는 패배를 예견했다. 극비리에 최측근들과 머리를 맞댔다. 핵심은 “중공군의 압박을 피하려면 정부를 어디로 이동하느냐”였다. 항일전쟁을 지휘했던 서남쪽으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다. 지리학자 장지쥔(張其均)이 대만 천도(遷都)를 건의했다. “중공은 해군과 공군이 없다. 대만으로 가면 한동안 저들의 추격을 저지할 수 있다. 물산이 풍부하고 일본인들이 건립한 공업시설이 그대로 남아있다. 교통망도 쓸 만하다. 공산당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지역이라 저항이 발생해도 진압하기 수월하다.” 지도를 볼 때마다 떠올랐던 대만의 생김새가 고구마에서 항공모함으로 바뀌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장제스는 300여 대의 전투기와 4개의 해군기지를 통째로 실어 날랐고 중앙군 30여만 명을 ..

지리/전쟁 2020.10.29

대구 전쟁

대구 전쟁 또는 아이슬란드 대구 전쟁(영어: the cod war 또는 영어: Icelandic Cod Wars, 또는 "영해 전쟁"는 1958년부터 1976년까지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에서 세 차례 일어난 ‘대구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슬란드는 당시 국가 수입의 95%를 어업에 의존하던 때였고, 대구의 황금어장이 바로 아이슬란드 근해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외국 어선들은 이곳을 자유자재로 드나들었고요. 그런데 경제 침체를 겪게 된 아이슬란드가 더 이상 이들의 남획을 두고 볼 수 없다면서 1958년 9월, 육지로부터 4해리(7.4㎞)까지인 바다의 국경, 배타적경제수역(EEZ)을 12해리까지로 넓히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때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유일하게 버틴 나라가 있었으니 당시 세계에서 가장 ..

지리/전쟁 202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