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는 인종의 구성면에서 남미에서 원주민의 구성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다. 처음에는 페루 부왕령 소속이었으나 1776년 라플라타 부왕령이 생기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관할권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1824년 12월에 볼리바르의 지원을 받은 안토니오 호세 데 수크레 장군이 아야쿠초 전투에서 승리한 후, 1825년 8월 추키사카에서 정식으로 볼리비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볼리비아는 볼리바르를 기념해 나라 이름도 볼리비아로 하고 추키사카 명칭도 수크레를 기념해 수크레로 바꾸고 볼리바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나 볼리바르가 콜롬비아로 귀국하면서 수크레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외국인인 볼리바르와 수크레가 그란 콜롬비아에 합병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1828년 수크레 대통령은 산타크루스 장군이 일으킨 군사반란으로 물러났으며 그 후 볼리비아는 카우디요들 간의 무력 투쟁으로 수많은 쿠데타, 정치적 암살 등으로 혼란이 계속 되는 가운데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초석 산지의 경제적 이권을 둘러싸고 칠레와의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 볼리비아는 1879년 페루와 연합하여 칠레와 태평양 전쟁을 치렀다.
볼리비아가 칠레의 초석 수출 회사에 세금을 부과하자 칠레가 안토파가스타주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 초석을 둘러싼 금융자본의 주축세력이었던 영국은 칠레의 해군을, 프랑스는 육군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미국까지 참여해서 막대한 전쟁비용과 무기를 지원했다. 근대화된 군대와 거대 금융자본의 도움으로 돈 걱정 없이 전쟁하는 칠레에게 페루는 완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으로 볼리비아는 황폐화됐으며 영토를 빼앗겼고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잃게 되어 지금과 같이 내륙국이 되고 만다.
1884년 강화조약으로 페루는 안토파가스타와 광물자원이 풍부한 타라파카·아라카 주와 리토랄 주를 병합했으며 이로 인해 볼리비아는 바다로 이어지는 영토를 잃고 내륙국이 되었다. 1929년이 돼서야 타크나 주는 페루에게 아리카(도시)는 칠레에게 귀속되었다. 반대로 아르헨티나에게 광대한 파타고니아의 지배권을 인정해야 했다.
태평양전쟁과 차코 전쟁으로 볼리비아의 영토는 독립 당시의 3/5으로 줄어들었다. 현재도 볼리비아는 해양으로 진출하겠다는 희망으로 티티카카 호수에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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