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칼파크스탄은 카라칼파크족이 사는 지역으로 우즈베키스탄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카라칼파크족은 주류인 우즈베크족과 다른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이다.
대부분의 인구가 아무다리야 강 의 물을 관개수로 댄 중부 지역에 몰려있다. 수도는 누쿠스이다.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의 면적은 166,590㎢이고 인구는 약 200만 명이다. 몽골족과 혼혈되었고, 튀르크어를 사용한다.
이들의 민족명 '카라칼팍'은 "검은 모자"를 의미하며, 카자흐에서 갈라져나온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언어 및 문화적으로 카자흐스탄과 가까운 편에 속한다.
킵차크족의 후예들
1) 카자흐: 16,000,000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 카자흐스탄의 주류민족이자 현대 킵차크족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며, 이웃한 중국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도 많은 인구가 소수민족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기원은 스키타이족, 훈족, 쿠만족, 몽골족 등 유전적으로 다양한 편이지만, 당시 15세기 우즈벡 칸국의 '아불 하이르 칸(Abulxayirxon)'의 정책을 반대한 카자흐 칸국의 시조 자니베크 칸과 케레이 칸을 따르는 여러 튀르크계 부족들이 연합하면서 오늘날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민족명 '카자흐'는 튀르크어로 "방랑자", "도망자", "독립", "자유"를 뜻하는 "Qaz"에서 기원한 것이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활약했던 코사크와도 그 어원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카자흐스탄을 정복했던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는 이 둘을 쉽게 구분짓기 위해 카자흐를 키르기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2) 볼가 타타르: 6,200,000
오늘날 러시아의 볼가-우랄 지역에 위치한 타타르스탄과 바시코르토스탄에 거주하는 킵차크계 민족으로, 러시아 연방 인구에서 두번째로 많은 인구 수를 자랑한다.
볼가 타타르인들은 옛 볼가 강 유역에 거주하던 불가르족의 직계 후예로, 옛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들은 러시아 공국들과 이슬람 세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으며, 러시아 밑으로 들어간 이후 러시아 문화와 체제에 익숙해진 이들은 러시아령 중앙아시아 내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담당함과 동시에 중앙아시아 튀르크 민족주의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기타로 볼가 타타르의 분파에 속한 '크라셴(Керәшеннәр)'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본래 다른 타타르인들과 마찬가지로 무슬림이었으나 16~19세기 동안 러시아의 강압적인 정교회 개종 정책으로 인해 기독교인이 된 케이스라고 한다.
3) 키르기스: 6,000,000
중앙아시아 국가 중 하나인 키르기스스탄의 주류민족으로 카자흐인들과 여러 모로 매우 가까운 관계에 속한다. 민족명 키르기스는 "40"을 의미하는 "크르크(кырк)"와 복수 접미사 "-으즈(-ыз)"가 합쳐진 것으로 이를 직역하면 "40개 부족의 집합체"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키르기스인들이 언제부터 오늘날 키르기스스탄으로 오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중세 시대에 예니세이 강 상류를 통해 서진하면서 정착한 것으로 보이며, 몽골 제국 도래 이후 중앙아시아로 들어온 몽골인들이 중앙아시아 고산 지역에 거주하던 튀르크 부족들과 혼합되면서 오늘날의 키르기스 민족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러시아의 자치공화국 알타이 공화국에서 쓰이는 남부 알타이어는 언어학적으로 키르기스어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속하는데, 이는 마찬가지로 알타이 지역에 거주하던 킵차크족과 몽골족의 혼합에 의한 결과로 보인다.
4) 바시키르: 1,700,000
러시아 우랄 산맥 인근에 위치한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일반적으로 이들의 민족명 바시키르는 바시키르어로 "우두머리 늑대"를 의미한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기원전 5세기에 집필된 헤로도토스의 '역사(ἱστορίαι)'에도 '아르기파에이(Ἀργιππαῖοι)'란 이름으로 언급될 정도로 상당히 오래 전부터 바시코르토스탄 일대에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스키타이인들처럼 옷을 입으나 특이한 언어를 구사하며, '폰티쿰'이라는 나무 열매에서 나온 검은 즙을 우유와 섞어 마시며 남는 열매는 빵으로 만들어 먹는다고 전해진다.
바시키르인들은 볼가 타타르인들과 마찬가지로 불가르족을 직계 조상을 두고 있으며, 뛰어난 기마술로 인해 16세기 러시아 밑으로 들어간 이후 자치권을 부여받는 대가로 러시아의 여러 대외전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2019년 카르파티아 분지에서 발견된 29명의 마자르족 유해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부계 조상이 바시키르인들과 가장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며, 바시코르토스탄의 부르쟌스키와 압젤릴로프스키 지구 출신 바시키르인들이 아르파드 왕조 구성원들과 가까운 친족 관계에 속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5) 카라칼파크: 796,000
우즈베키스탄 북서부에 위치한 자치공화국 카라칼팍스탄의 민족으로, 대부분의 인구가 아무다리야 강 의 물을 관개수로 댄 중부 지역에 몰려있다.
이들의 민족명 '카라칼팍'은 "검은 모자"를 의미하며, 카자흐에서 갈라져나온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언어 및 문화적으로 카자흐스탄과 가까운 편에 속한다.
6) 쿠미크: 520,000
러시아 다게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민족으로, 북캅카스 일대에 위치했던 하자르의 후예 또는 12~13세기 다게스탄 지역에 정착한 킵차크족의 일파로 추정된다.
쿠미크인들은 기후와 토양이 좋기로 유명한 북캅카스 일대에 터잡고 살았기 때문에 대부분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며, 또한 러시아가 진출하기 이전의 캅카스 지역에서 실세격 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쿠미크어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북캅카스 일대에서 공용어로 널리 쓰일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았다고 한다.
7) 크림 타타르: 500,000
킵차크 칸국에서 갈라져나온 크림 칸국의 후예로, 인구의 반은 우크라이나에, 나머지 반은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다. 크림 칸국이 러시아에 의해 멸망했을 당시 수많은 타타르인들이 오스만 제국으로 피난을 떠났는데, 튀르키예 정부에서 이에 관해 공식 조사를 하지 않아 오늘날 튀르키예 영토 내에 크림 타타르인의 후예가 얼마나 사는지 알 수 없으나 최소 350만 명에서 최대 6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쿠만족의 후예 중 하나인 크림 타타르인들은 크림 칸국 시절부터 동슬라브인과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 체르케스인들을 노예를 잡아다 중동으로 팔아버리는 악행들을 저질렀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나름 존중을 받는 볼가 타타르인들과 다르게 이들은 과거사로 인해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철저하게 탄압당했고, 소련 시절에는 아예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해 1989년까지 돌아오지도 못하고 "반역자", "부르주아", "몽골인" 등으로 비방당하며 온갖 비국민 취급을 당한 흑역사가 있다.
8) 카라차이: 346,000
러시아 카라차예보-체르케스카야 공화국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공화국 내에서 약 40%의 인구를 차지한다.
이들은 인종적으로 선사 시절 캅카스 지역에서 발흥한 '코반 문화(Кобанская культура)'와 강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알라니아의 오세트인과 먼 훗날 캅카스 지역으로 침공한 킵차크인이 혼혈되면서 오늘날의 정체성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타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 '엘브루스 산(Эльбрус, 5,642m)'을 공화국의 상징으로써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9) 발카르: 112,000
러시아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이들은 본래 카라차이인과 같은 민족에 속했으나 14세기 티무르의 알라니아 침공으로 인해 각자 깊은 산속으로 도망치면서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10) 노가이: 110,000
러시아 다게스탄 북부 지역과 스타브로폴 크라이, 카라차예보-체르케스카야 공화국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민족으로, 민족명 '노가이'는 칭기즈 칸의 증손 '노가이 칸(Nogai Khan)'에게서 유래했다.
이들은 몽골계에 속한 망기트 부족을 중심으로 뭉친 튀르크 부족들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주로 농업에 종사한 크림 타타르인과 다르게 크림 칸국 북부 스텝에서 유목민으로 지내며 크림 칸국의 노예무역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후 볼가 강 지역으로 이주해온 칼미크족과 노가이인들을 벼르고 있던 러시아 제국의 이중 침략 및 학살을 이겨내지 못하고 대부분이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살던 터키인들에게 동화되었고, 북캅카스 지역으로 피난을 떠난 일부만이 노가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11) 시베리아 타타르 6,000
서시베리아의 삼림과 스텝 지역에 살고 있는 타타르인들로, 역사적으로 서쪽의 우랄 산맥부터 동쪽의 예니세이 강까지 드넓은 지역에 퍼져 살고 있었다.
지리적인 위치 탓에 시베리아 타타르인들은 유전적으로 몽골 및 튀르크 민족보다 우랄계 민족에 속한 한티-만시인과 사모예드인, 예니세이 강의 원주민이던 예니세이인에 가까우며, 이들은 한때 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의 첫 희생양이 되었던 시비르 칸국의 주요 지배층이기도 했다.
이들은 러시아에 종속된 이후 시베리아로 건너온 볼가 타타르인과 많이 뒤섞인 탓에 오늘날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단순히 '타타르'로만 인식하며, 지역 학교 내에선 시베리아 타타르어가 아닌 러시아어와 볼가 타타르어로만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 이들의 고유어는 사멸 위기에 처한 상태이다.
12) 카라임: 2,500
크림 반도와 옛 폴란드-리투아니아 지역에 살던 크림 타타르어의 방언에 속한 카라임어를 구사하는 유대교도들로, 이들은 스스로를 유대교를 믿던 하자르의 후예로 여기나 주류 유대교를 믿던 것으로 보이는 하자르와 다르게 이들은 고유의 종파인 '카라이트 유대교(Караїмізм)'를 믿고 있어 현재 이들의 정확한 기원을 판별하기 어렵다.
러시아 제국이 크림 반도를 정복했을 당시 카라임 공동체는 반유대주의의 표적이 되지 않고자 차르에게 자신들은 유대인과는 구별된 집단이라는 사절을 보냈고, 카라이트 유대교는 주류 종파와 다르게 탈무드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비유대인으로 구별되어 기독교인 또는 크림 타타르인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가 있었다.
때문에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로부터 타타르인 또는 유대화된 크림 고트족으로 분류되어 전쟁 속에서도 홀로코스트의 광풍을 피할 수 있었으나 유대인들 사이에서 한동안 따돌림당하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13) 크림차크: 1,200
카라임과 마찬가지로 크림 반도에 살던 유대교 공동체로, 카라이트 유대교를 믿는 이웃 카라임과 다르게 이들은 '정통파 유대교(Orthodox Judaism)'를 믿으나 제3자에 속한 크림 타타르인들은 이 둘을 구레나룻의 유무로 판별했다고 한다. (※ 크림차크는 정통파 유대교 공동체답게 구레나룻을 길렀으며, 반대로 카라임은 구레나룻을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카라임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기원은 불명이나 상업을 위해 여러 곳에서 온 다양한 유대인들을 조상으로 두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며, 크림 칸국이 들어선 이후로도 언어만 튀르크화되었지 타타르인과 섞이길 거부하여 혈통은 사실상 제노바 식민지를 통해 들어온 유럽인 또는 아슈케나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대교를 고수했던 탓에 러시아 제국과 나치 독일의 표적이 되었으며, 특히 1941년 크림 반도를 점령한 나치 독일에 의해 인구의 75%에 달하는 6,000여 명이 홀로코스트에 휘말려 살해당한 탓에 크림 반도 공동체가 사실상 붕괴했다고 한다. 때문에 오늘날엔 대부분의 인구가 우크라이나가 아닌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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