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30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 코스트]

코트디부아르는 ‘상아 해안’의 뜻인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로 널리 알려져 있다. 면적은 32만 2463㎢, 해안선 길이는 515㎞, 인구는 2329만 5302명(2015년 현재)이다. 법적 수도는 아무수크로(Yamoussoukro), 행정경제 수도는 아비장(Abidjan)이며, 행정구역은 19개 주(region)로 되어 있다.종족은 부알레족(Bouale)·아그니족(Agni)·말랑케(Malinke) 등 60여 부족이 존재하고,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종교는 이슬람교 35% 이상, 기독교 20% 이상, 토착종교 25% 이상이다. 서부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는 나라로, 1893년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1946년 프랑스연합을 구성하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편입되었다. 1957년 자치정부를 수립..

내전 2020.10.20

차드내전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차드는 남부의 기독교파와 북부와 동부 이슬람파의 남북 대립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1966년 북부의 반정부 세력이 FROLINAT가 구축되어 무력투쟁을 개시했다. 초기에는 남부 정부군과 북부 반정부군과의 전쟁이 전개되어 프랑스가 남부, 리비아가 북부를 지원했다. 1979년 정전협약이 카노 협정을 체결하였으나 FROLINAT가 구쿠니 웨데이의 인민 구쿠니파(FAP)과 이센 아브레의 북부 아브레파(FAN)으로 분열되어 갈등과 대립이 심해졌고 구쿠니 웨데이가GUNT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국방장관 이센 아브레와의 대립이 더욱 심해져 1980년 3월 FAP와 FAN의 내전이 재발하였다. 1980년 12월 구쿠니파 FAP를 지원하던 리비아는 7000명의 군대를 보내 주둔시키..

내전 2020.10.20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1833년 영국에서는 성공회 신자인 윌리엄 윌버포스등의 인도주의자들의 노예제도 반대운동으로,노예제도가 금지됨으로써 해방노예를 식민시켰는데, 그 명분은 해방노예의 자치국을 만든다는 데 있었으나 ,실제로는 해방노예들을 이주시킨 식민지를 특허회사의 식민지 경영에 이용하고 흑인과 백인을 분리시킨다는의도가 있었다. 1961년 4월 27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97년 민주 대통령이던 아흐마드 테잔 카바가 독재자 포데이 산코라의 쿠데타로 쫓겨났다가 주변 국가들의 도움으로 다시 복귀했다. 시에라리온은 1930년에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이래, 다이아몬드 채굴을 기반으로 한 다이아몬드수출국이다. 시에라리온 특별기업합동은 25년간 다이아몬드의 탐사권을 독점하여 이익의 다수를 정부에 상납하였다.그러나 동시에 많은 부분..

내전 2020.10.20

아프리카 유일한 종교 내전 ‘수단내전’

수단 내전은 1983년 기독교도와 전통종교를 믿고 인종적으로 아프리카계인 남부 반군이 아랍 이슬람계가 다수인 북부 정부군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수단 내전은 본질적으로 반정부 분리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종교.부족 간의 갈등과 석유 등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각축전이 가미되면서 격화돼 왔다. 북부의 이슬람 문화에 반하여 남부의 크리스찬 문화는 오랫동안의 반목을 만들어 냈는데, 2회에 걸친 수단 내전으로 인해 자치구가 형성되었고, 남수단은 대통령을 별도로 선출한다. 남수단 분리 전 수단은 아프리카 석유 매장량 5위 국가였다. 남수단은 이 가운데 75%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석유 수출을 위한 파이프 라인, 항구, 정유 시설은 수단에 몰려 있다. 수단은 영국이 이질적인 부족을 강제로 병합하여..

내전 2020.10.20

소말리아 내전

소말리아는 이탈리아, 영국및 이디오피와의 영토확정으로, 탈 식민지화 이후 내부적인 여러 요인을 내포하고 있었다. 1960년에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던 남부 소말리아와 합쳐져서 독립했다. 소말리아에서는 1969년 당시 육군소장이던 모하메드 사이드 바레(Barre)가 군사쿠테타를 일의켜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뒤 22년간 장기집권하자 바레 정권 때 군장성을 지내기도 했던 무하마드 파라 아이디드가 반군단체를 이끌고 바레를 축출하면서 임시정부를 수립, 알리 마디 무하마드를 임시정부 수반으로 세웠다. 그러나 둘 사이에 권력 다툼이 발생하면서 소말리아는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이는 소말리아 내의 대부분 군벌들및 파벌간의 정쟁으로 비화,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 1991년 심한 가뭄에 의해..

내전 2020.10.20

그루지아전쟁(조지아)

면적69,700㎢ 코카서스 산맥과 터키에 위치한 흑해 연안국 .이 나라 안에 3개의 자치공화국이 있다. 있다. 압하지아, 북부의 남오세티아, 서남부의 아자리아(회교화된 그루지아인:해체)공화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루지아는 스탈인의 고향이다. 즉 그루지아인이다.그 루지아 내전은 ‘친러’와 ‘친서방’의 갈등이 있다. 그루지아의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아는 전통적인 친러성향이지만, 2004년 장미혁명 이후 그루지아의 대통령이 된 사카슈빌리는 친서방 성향을 띄고 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그루지야에 속한 자치공화국이 된 남오세티야는 러시아에 속한 북오세티야와 통합하기 위해 독립을 요구했지만, 내전 끝에 1994년 정전협정을 맺고 지내왔다.하지만 2004년 그루지야에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집권하고 , 그가 본..

내전 2020.10.19

앙골라 내전.. 강대국의 대리전쟁

앙골라 공화국은 아프리카 남서부에 있는 국가이다. 면적은 1,246,700 ㎢ 이며 인구는 15,941,000명2005년)이다.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였다. 1980년부터 1990년까지는 소비에트 연방의 원조를 받았다. 1992년에 소련의 해체와 1996년 소련군의 철수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와 국방문제가 크게 부각되었고, 국민들이 기아상태에 놓여있었다.90년대 중후반에 걸쳐 미국의 보호를 받는 "앙골라 완전독립민주동맹(UNITA)"의 내란이 일어났다.앙골라는 1992년 이전에는 '앙골라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었으나 1992년부터 '앙골라 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앙골라 내전은 앙골라 인민 해방 운동(MPLA)과 앙골라 전면 독립 민족 동맹(UNITA), 앙골라 해방 민족전선 (FNLA)간의 게..

내전 2020.10.12

아프리카의 세계 대전 '콩고 내전'

콩고 민주공화국은 중부 아프리카의 적도에 걸쳐 있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큰 나라로 옛이름은 자이르(Zaire)이다. 국토 면적은 2,344,858 ㎢으로 세계 12위로 인구는 85,026,000명(2016년)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국가로 순도 높은 동광과 코발트광은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다. 이웃의 콩고 공화국과 구별하기 위하여 수도 이름을 붙여 킨샤사 콩고라고 부르기도 하고, 약칭으로 DR 콩고, DRC(이상 영어), RDC(프랑스어), 민주콩고, 동콩고로도 부른다. 10∼14세기에 서쪽과 북쪽에서 지금의 콩고 민주공화국으로 들어와 16세기 유럽의 침략을 받을 때까지 왕국을 이루며 번창했던 반투족이 지금도 인구의 과반수를 이루며 국가 면적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800..

내전 2020.10.12

유고슬라비아 내전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영토에서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일어난 무력 분쟁을 일컫는다. 처음에는 흔히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 불렀지만 1992년 연방이 해체됨에 따라 내전으로 정의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내전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6개 구성 공화국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다. 전통적으로 발칸반도 의 세르비아인은 민족의식이 강해, 1차 대전을 유발시킨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 사건을 일으킨 18세의 청년이자 대학생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란츠가 세르비아계 청년이며 이에리사의 세계탁구 선수권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유고슬라비아는 바다건너 이탈리아와 아드리아 해안을 경계로 아드리아해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발칸 반도의 폭탄이라 불리운다.유고슬라비아 전쟁은?유고슬라..

내전 2020.10.12

그루지아전쟁(조지아)

면적69,700㎢ 코카서스 산맥과 터키에 위치한 흑해 연안국으로 이 나라 안에 3개의 자치공화국이있다. 압하지아, 북부의 남오세티아, 서남부의 아자리아(회교화된 그루지아인)공화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루지아는 스탈인의 고향이다. 즉 그루지아인이다.그 루지아 내전은 ‘친러’와 ‘친서방’의 갈등이 있다. 그루지야의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아는 전통적인 친러성향이지만, 2004년 장미혁명 이후 그루지아의 대통령이 된 사카슈빌리는 친서방 성향을 띄고 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그루지야에 속한 자치공화국이 된 남오세티야는 러시아에 속한 북오세티야와 통합하기 위해 독립을 요구했지만, 내전 끝에 1994년 정전협정을 맺고 지내왔다.하지만 2004년 그루지야에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집권하고 ,그가 본격적인 영토 통..

내전 2020.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