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88

중세 스위스는 용병으로 먹고 살았다..

스위스가 정확하게 어느 시점부터 용병업을 국가사업으로 운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3세기 시점부터 스위스 용병의 강인함은 유럽 최강으로 정평이 있었다고 알려졌었다. 내륙국인 데다 국토의 대부분이 알프스 같은 산지에 얽혀있기 때문에 무역과 산업이 발달할 기틀이 없었고 이에 따라서 가난했던 스위스는 용병업으로 생계를 꾸렸던 것. 또한 중세 스위스의 역사는 지배자인 합스부르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끊임없는 항쟁의 역사였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히 수많은 전투를 겪은 베테랑 병사들이 양성될 수 있었다. 스위스라는 험준한 환경 속에서 전투를 겪으며 단련된 이들은 자연히 타지로 나와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다. 당시 스위스는 강한 중앙집권화 대신 각 주마다 느슨하게 연결된 상태였고, 때문에 저마다 군대를 양성하고 보..

세계역사 2020.11.02

마자르족의 헝가리 이주

마자르족은 주로 헝가리에 거주하나 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슬로바키아·우크라이나 등지에도 소수가 산다. 루마니아의 마자르 자치지역(지금의 코바스나·하르기타·무레슈 주 등)의 헝가리인은 약 86만 명이며, 세클레르족으로 불린다. 헝가리는 9세기 경 마자르족이 중부유럽에 세운 국가다. 그런데 이에 앞서 AD 374년경 ‘발라미르’가 이끄는 아시아 기마군단 훈족이 볼가강과 돈강을 건너 동고트를 점령하고 드네프르를 건너 서고트를 축출하는 등 유럽을 파죽지세로 공격하면서 들이닥치게 된다.  유럽은 공포에 떨었고, 이들의 공격을 “신의 징벌”이라고까지 했다. AD 400년경에는 ‘울딘’이 다시 훈족을 이끌고 유럽을 초토화시키자 고트족이 헝가리·이탈리아 등지로 피난을 하면서「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초래되고 세계사와 세..

세계역사 2020.11.01

몽골 귀족 작위

몽골 제국 및 원 (1206년–1368년) 귀족 작위 카간(한자: 可汗 가한): 몽골 제국의 최고 지배자. 황제. 칸(한자: 汗 한): 왕 노얀(한자: 國王 국왕): 속국 및 조공국의 왕 지농(한자: 濟農 제농): 카간위 계승자. 황태자. 원나라 때 지농은 카라코룸에 머무르며 종교의식을 관장했다. 칸쿠(한자: 王子 왕자) 미르자 (한자: 米爾扎 미이찰): 페르시아의 공후. 군사 계급 투메투인 노얀(Tumetu-iin Noyan, 한국 한자: 萬戶長 만호장): 병사 1만 명의 투멘의 지도자. 제국이 건국된 1206년에는 총 9개 투멘이 있었는데, 1368년에는 40개 몽골 투멘과 4개 오이라트 투멘으로 불어났다. 밍간우 노얀(Mingghan-u Noyan, 한국 한자: 千戶長 천호장): 병사 1천 명의 밍..

세계역사 2020.11.01

발트해의 강국, 스웨던 제국

스웨덴 제국(열강의 시대)이란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발틱 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유럽의 패권국으로 부상했던 시절의 스웨덴 왕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즉위한 1611년에 제국이 성립되어, 1721년 대북방 전쟁 종전과 함께 붕괴할 때까지 존재한 국가로 본다. 1523년 스웨덴은 덴마크와의 스웨덴 해방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칼마르 동맹에서 독립했다. 이를 계기로 칼마르 동맹은 해체되었다.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한 구스타브 1세 바사(재위 1523-1560)는 1718년까지 계속된 바사 왕조의 계보를 확립하고 루터교로 이행하는 종교개혁을 강행하였다. 그의 후계자들 치세에 스웨덴은 루터교, 개혁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사이에서 커다란 난항을 겪었다. 1611년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세계역사 2020.10.30

노예가 만든 나라 '맘루크왕조'

맘루크는 무슬림 노예 군인이나 노예 출신 지배자를 일컫는 말로, 9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존재했다. 아랍어로 소유된 자, 즉 피소유자라는 뜻이다. 이들은 주로 튀르크족, 이집트 콥트 신자, 체르케스인, 압하지야인, 조지아인, 발칸 출신으로 구성되었는데, 이중에서도 중앙아시아•남아시아 지역의 맘루크들은 맘루크와 비슷한 뜻을 지닌 굴람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9세기 압바시아 왕조 8대 칼리파 무타씸(Mu'tasim, 833년-842년 재위)이 맘루크 제도를 도입하였다. 특수 훈련을 받은 중앙 아시아 출신의 투르크 노예로 근위대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이들 맘루크 집단은 당나라 후기의 절도사 세력이 정권을 휘둘렀던 것처럼, 서서히 칼리파의 선출과 폐위에 관여하기 시작하고, 난동, 암살, 매관, 매..

세계역사 2020.10.30

러시아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러시아의 총면적은 1,707만 5,400km², 남북의 길이가 2,500~4,000km이고 동서가 9,000km에 달한다. 현재 러시아를 구성한 최초의 민족인 슬라브인의 조상들은 200년 무렵부터 500여 년 동안 지금의 루마니아와 체코, 슬로바키아에 걸쳐있는 카르파티아산맥 동북쪽 산림 지대에 정착해 살았다. 슬라브 민족은 게르만, 라틴, 앵글로-색슨, 발트 민족 등과 함께 유럽 대륙의 주요 민족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잦은 외세의 침입을 견디지 못하고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가게 되면서 서슬라브인·남슬라브인·동슬라브인 3개의 집단으로 나뉘었다. 서슬라브인은 오늘날의 폴란드·체코, 슬로바키아·소르비아인에 속하고, 남슬라브인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불가리아·몬테네그로인에 속한다. 그..

세계역사 2020.10.29

'중국 피라미드'의 미스테리

중국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것은 사실 고대의 토루로 대부분이 묘지로 쓰인 것이 아니다. 이 피라미드의 대다수가 중국 중부 산시 성의 시안 시의 반경 100킬로미터 이내의 진천 평원에 있다. 서양에는 최소 한 세기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 존재는 인기몰이 위주의 선전과 몇몇 정치제도 때문에 발생한 중국 고고학의 문제점들로 인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최초의 발견은 1945년에 인근을 비행하던 미국 수송기 조종사의 사진촬영과 보고서에 의해서이다. 그 이전까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으로 알고 있었다. 1963년에,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이들 거대한 피라미드를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으로 예상하고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년에 실시된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

세계역사 2020.10.27

스스로 ‘황제’가 된 아프리카 군인

아프리카의 많은 독재자들 중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장 베델 보카사(1921~1996)는 특히 지독한 악행과 기행을 벌였다. 그는 흑인, 유럽인, 아랍인 등 다양한 인종의 부인 17명과의 사이에서 50여 명의 자녀를 둔 호색한이었다. 군 최고 사령관이었던 그는 1965년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고 나서 1972년에는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도 성에 차지 않은 그는 자신이 흠모하는 나폴레옹처럼 되고자 국호를 중앙아프리카제국으로 바꾸고 보카사 1세라 칭하며 황제가 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지나치게 존경하고 있었던 보카사는 제국 선포 만 1주년이 되는 1977년 12월 4일에 약 2천만 달러에 이르는 경비를 지출한 사치스러운 대관식을 마련했다. 즉위식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했을때와 완전히 똑같은 방..

세계역사 2020.10.25

러시아는 킵차크 칸국(몽골)의 후예

킵차크 칸국이란 몽골 제국이 분열된 이후에 설립된 4대 칸국 가운데 하나이다. 표제어인 킵차크 칸국은 몽골이 튀르크와 함께 이 곳에 오기 전 이전 이 지역을 지배하던 중세 튀르크계 민족인 킵차크인에서 따온 것이다. 킵차크인들이 살게 된 이후 이 지역을 킵차크 초원이라고 불렀으므로 몽골인들이 세운 왕국 역시 킵차크 칸국이라고 부른 것이다. 금장 칸국(the Golden Horde, 金帳汗國, )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쓰이는데, 이는 킵차크 칸국이 망하고 난 후인 16세기에 러시아인들이 몽골인들의 황금 천막에 붙인 별명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부르는 킵차크 칸국이나 금장 칸국(the Golden Horde)이란 명칭은 당시 몽골인들이 사용한 명칭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호칭한 것에 불과하다. 킵차크 칸국과..

세계역사 2020.10.25

독일 제2제국

독일 제국은 1871년부터 1918년까지 존속했던 국가이다. 독일 지역에서 근대 국민국가를 탄생시킴으로써 현대 독일의 모태가 되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독일의 통일로 성립되어, 장기 19세기 말의 대표적인 강대국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제정이 붕괴하고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도이체스 라이히라는 명칭은 이 때부터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바이마르 공화국 및 나치 독일에서도 쓰였다. 나치 독일의 영향으로 독일 제국을 제2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방의 형태로서 4 왕국, 6 대공국, 5 공국, 7 후국, 3 자유시 및 "엘자스-로트링겐 제국령"(Reichsland Elsaß-Lothringen)으로 이루어졌으나 프로이센 왕국이 제국 면적의 3/5를, 인구의 2/3을 차지하였다. 19세기, 39..

세계역사 202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