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88

5번이나 분할된 폴란드의 역사

1917년 8월, 폴란드는 그해 말 새로운 독립 국가를 건국할 수 있도록 제1차 대전 승전국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및 미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폴란드는 한때 동유럽의 강자로 군림하기도 하였으나 18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주변의 프러시아,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해 완전 분할 점령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로부터 어언 150여년이 지난 후에 드디어 폴란드는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결성하여 동유럽의 강자로 군림하였으나 독일,오스트리이,러시아로 분할되어 있다가 1차 대전후 독립 했다. 신생국으로 겨우 독립하였지만 당시의 여건을 고려한다면 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당히 컸다. 지난 150여 년간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였던 독일, 오스트리아, ..

세계역사 2020.10.21

사라진 50만명의 군대

제1차 대전의 한중간 연합군 진영으로서 독일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던 제정 러시아에, 돌연 혁명이 일어나 로마노프 왕조는 붕괴해 버렸다. 1917년 2월의 일이다. 이윽고, 정권을 잡은 소비에트 정부는 독일과 휴전협정을 체결해 버린다. 그리고, 대신에 러시아 국내에서 제정 러시아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백군(白軍)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백군은 제정 러시아의 코르차크 제독에 이끌려 동쪽 우랄의 옴스크라는 도시를 거점으로, 혁명정부군인 적군과 격렬하게 싸웠으나 1919년 11월에 마침내 패배해 버렸다. 거기서 재기를 도모하기 위해서 동쪽으로 피하게 되었다. 가야할 곳은 적군의 추격대가 손닿지않는 시베리아의 두메 산골이었다.패퇴하는 백군은 거의 50만명을 헤아렸고 거기에 제정러시아 시대의 귀족, 승려등의 망명자..

세계역사 2020.10.21

◈ 기사단의 유래

십자군 전쟁은 유럽인들이 이슬람교도들을 상대로 벌인 일련의 군사원정(1095~1270)으로 기사단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십자군 3대 기사단은 '성 요한 기사단', '성전 기사단', '튜튼 기사단'이다. 성 요한 기사단은 의료를 겸하는 구호 기사단이었고, 탬플 기사단은 이슬람에 가장 적대적인 기사단이었다. 튜턴 기사단은 독일 기부단체에서 시작된 기사단이다. 이들은 십자가라는 공통 문양을 가지고 있었고, 색의 조합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 세 종교 기사단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매우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집단이었다.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 중 가장 용감히 싸웠고 이슬람 군에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사자왕 리처드 같은 국왕이 이끄는 군대가 아니라 이러한 종교 기사단들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종교기사..

세계역사 2020.10.20

바스크

베레모의 발상지 바스크인(Basques)는 피레네 산맥에 사는 종족으로, 250여 만 명이 에스파냐에 살고, 55만 정도가 프랑스 지역에 산다. 한 번도 통일 정부를 가져본 적이 없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거나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통치아래 살았다. 1980년대 이후 에스파냐 정부는 제한된 자치권을 부여하여 세 개의 자치구역이 생겨났다 우리에게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레알 소시에다드, 오사수나와 더불어 바스크지역을 대표하는 축구단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틀랜틱 빌바오가 바스크 지역의 맹주라 불리우는 가장 큰 이유는 팀창단 이래 단 한반도 외극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사비 알론소. 요렌테 등이 바스크족 출신으로 유명한 선수다. 바스크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독특하다. 프랑스 사람들과 스페인 사람들..

세계역사 2020.10.20

고대에도 고속도로가 있었다..

동양과 서양을 횡으로 연결하는고대의 길로 세개의 간선이 있었다.초원길,오아시스길,바닷길이다. 초원길은 동서문명 교류의 주통로로 사용되었던 길이며 유라시아 북방 초원 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8,000㎞ 길이다. 서쪽의 끝인 카스피해 연안 혹은 발트해 남단으로부터 흑해의 동북편과 남러시아의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을 지나 카자흐스탄과 알타이 산맥 이남의 준가리아 분지를 지나 몽골 고비 사막의 북단 오르 혼 강 연안으로 이어진다. 이후 동남향으로 바꾸어 중국의 화북지방에 이르러 그 동쪽 끝에 이른다. 그러나 이길을 연장하여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유라시아초원의 동, 서 양끝은 만주와 헝가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들 지역은 유목과 농업의 혼합경제가 형성되었다. 유라시아 초원의 서남쪽 변두리인 중동..

세계역사 2020.10.20

신들의 나라 & 565개의 왕국의 나라 인도

2011년도에 인도 케랄라주의 한 힌두사원에서 220억 달러 정도의 보물이 발견되었다. 이보물은 인도의 토호국인 트라방코르 왕국의 유산으로 영국의 식민지를 거쳐 최종적으로 시킴을 합병하기 전까지 각 지방에는 자치가 허용되는"마하라자"라는 힌두및 이슬람의 562여개의 토호국이 존재했다. 인도에는 지방에 많은 제후국이 있었는데, 영국이 진출하면서 그 수를 감축하여, 영국 통치기에는 500여 개의 토후국이 있었다. 영국은 이 토후국들을 직할령(直轄領)으로는 하지 않고 간접통치를 하여, 내정 권한만을 주었다. 토후국의 규모는 인구 1600만의 하이데라바드 번왕국으로부터,면적 1.65㎢, 인구 82명(1941년)의 빌바리(Bilbari) 토후국까지 다양했다. 독립 이후에는 토후국 대부분은 인도, 일부는 파키스탄에..

세계역사 2020.10.19

그리스 독립전쟁은 어부지리

1821년부터 1829년까지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 그리스 독립 전쟁의 결과 런던 의정서로 신생 그리스 국가는 독립을 인정받았다. 독립 당시의 영토는 아테네 일대에 국한되었으나, 영국은 1864년 이오니아 제도를 그리스에 할양하고 1881년 테살리아 지방을, 1912년 마케도니아 및 이피로스, 1913년 크리티 섬을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하게 된다 .발칸 전쟁(1912~ 1913 까지 발칸 반도에서 일어난 전쟁, 발칸 동맹(그리스,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세르비아) 과 오스만 제국과 제2차 발칸 전쟁 1913년 6월~1913년 8월)의 결과, 그리스는 영토와 인구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그리스는 무스타파 케말의 터키 민족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였고,로잔 조약으로 로잔 조약으로 두 나..

세계역사 2020.10.19

레판토 해전의 역사적 의의

지중해를 제압하고 있던 투르크가 키프로스섬을 빼앗자, 1571년 10월 7일 교황 피우스 5세는 돈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지휘하는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의 연합함대로 하여금 코린트만(灣)레판토 앞바다의 알리 파차가 지휘하는 투르크 함대를 공격하게 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 이후 신성 동맹은 일시적으로?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으며,?로마를 오스만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유럽을 향한 오스만의 팽창을 저지하였다. 이 전투는 15세기부터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았던 오스만 군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입혔다. 또한 기독교 세계의 절반에게 레판토 해전은?"기독교의 영원한 적"으로 여겨진 투르크 족의 몰락이라는 염원을 고취시켰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그 함선의 거의 대부분과 30,000명의 병사 거의 ..

세계역사 2020.10.19

콜롬부스 이전에 정화 원정대가 있었다

정화의 선조는 칭키스칸의 아랍 원정때 귀순해온 아랍인의 후손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며 쿠빌라이의 윈난성 개발에 노력했던 사이드 아잘 샴스앗딘 이었다. 정화가 이슬람교도 출신이었던 것은 나중에 영락제가 대원정을 준비할 때 그 지휘관으로 정화를 맘에 두게 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주원장이 명나라 건국후 원나라 세력이었던 윈난성을 공격할때 소년이었던 정화(12세)는 붙잡혀 거세된 뒤 환관이 되어 당시 연왕(燕王)이었던 주체(朱?에게 헌상되었다.주원장 사후 영락제가 제위를 찬탈한 정난의 변(靖難의 變) 때 정화는 공적을 세워, 영락제로부터 정(鄭) 씨란 성을 하사받고 환관의 최고위직인 태감이 되었다. 정화는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남쪽 바다에 대한 대원정을 준비하여 1405년 6월 제1차 원정을 떠났다...

세계역사 2020.10.19

헬베티아 공화국(스위스)

정식 명칭은 헬베티아 연방(라틴어)이지만 스위스 연방이라 부르기도 한다. 스위스는 26개의 주(칸톤)로 구성된 연방 국가이다. 1291년 스위스 지역의 3인 대표가 현재의 수도 베른에 모여 자치 보존을 위해 영구 동맹을 맺은 게 스위스 연방의 기원이며, 이 동맹에 가담하는 주가 늘어났다.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1499년 스위스를 공격하였으나 패하였고 바젤 조약에 따라 스위스는 독립을 인받았다. 이후 1815년 빈 회의에서 영구중립국이 되었고, 그 후 파리회의에서 재확인되었다. 스위스의 주는 1848년 스위스 연방이 세워질 때까지 국방과 통화를 포함한 완벽한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었으며 연방이 성립된 이후에도 고유한 정치 체계와 입법권, 행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칸톤은 이른바 ..

세계역사 202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