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88

거란족(요나라)은 어디로 갔을까?

거란(契丹) 또는 키탄(Khitan)은 몽고계의 한 종족으로 추정되는 거란은 모용연에 의해 격파된 선비족이 우문 · 해 · 거란으로 분리된 4세기 전반부터 사서에 등장한다. 5세기 중엽부터 내몽골의 시라무렌 강 유역에 거주했다. 언어적이나 문화적으로 볼 땐 몽골계에 가깝다. 자신들이 사용한 명칭은 '키탄'이며, '키타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란식 이름이다. 지금은 사라진 민족이며, 중국의 몽골계로 분류되는 소수민족 중 하나인 다우르족(達斡爾族, Daur)이 거란족의 후예로 추정된다. 거란족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북위 때이다. 그들은 몽골 동부를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했다. 당시 거란족은 8개 부락이 독립적으로 활동했고 부족연맹은 결성되지 않았다. 남북조 시대에는 북위와 북제의 공격으로 타격을..

세계역사 2020.10.12

75 만개 벙커의 나라

발칸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인민 공화국. 영토의 70퍼센트가 산악 고지대이며 이곳에 농경지가 집중되어 있다. 산지(山地)가 많아 목축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일찍이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65퍼센트가 이슬람교도이다. 1946년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하였고 1990년 이후 차츰 민주화되고 있는 중이다. 수도는 타라나이고 면적은 29,000㎢이다. 알바니아는 로마제국 시대에 일리리아인의 후손으로 유럽에서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유럽에서 유일한 나라이다. 특히, 수피즘인 벡타시를 믿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도 세속적인 나머지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먹음에 거리낌이 없다. 전체적으로 카눈이라는 명예살인 제도를 제외하면 매우 세속적이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면적으로 수천년 동안 강대국..

세계역사 2020.10.12

줄을 잘 서야지? 오스만 투르크의 몰락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한구석에서 나온 소군후국으로부터 발전한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는 이윽고 동로마 제국 등 남동유럽의 기독교 제국, 맘루크 왕조 등의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제국을 정복하여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하여 세계 제국인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쇠퇴하여 그 영토는 다른 나라에 점령되거나 독립하여 20세기 초반에 마침내 마지막에 남은 영토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롭게 건국되어 나온 국민 국가인 터키 공화국이 되었다. 오스만 건국은 13세기 말에 동로마 제국과 룸 술탄국의 국경 지대인 아나톨리아 서북부에 등장한 유목 부족장 오스만 1세가 인솔한 군사 집단이 오스만 제국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 집단의 성격에 대해서는 유목민 집단이었다는 설이 널리 알려졌지만, 일반적..

세계역사 2020.10.10

레판토 해전의 의미

지중해를 제압하고 있던 투르크가 키프로스섬을 빼앗자, 1571년 10월 7일 교황 피우스 5세는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지휘하는 베네치아 ·제노바 ·에스파냐의 연합함대로 하여금 코린트만(灣) 레판토 앞바다의 알리 파차가 지휘하는 투르크 함대를 공격하게 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 이후 신성 동맹은 일시적으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으며, 로마를 오스만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유럽을 향한 오스만의 팽창을 저지하였다. 이 전투는 15세기부터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았던 오스만 군에게 궤멸적인 피해를 입혔다. 또한 기독교 세계의 절반에게 레판토 해전은?"기독교의 영원한 적"으로 여겨진 투르크 족의 몰락이라는 염원을 고취시켰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그 함선의 거의 대부분과 30,000명의 병사 거..

세계역사 2020.10.10

콜롬부스 이전에 정화 원정대가 있었다.

정화의 선조는 칭키스칸의 아랍 원정 때 귀순해온 아랍인의 후손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며 쿠빌라이의 윈난성 개발에 노력했던 사이드 아잘 샴스앗딘 이었다. 정화가 이슬람교도 출신이 었던 것은 나중에 영락제가 대원정을 준비할 때 그 지휘관으로 정화를 맘에 두게 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주원장이 명나라 건국 후 원나라 세력이었던 윈난성을 공격할 때 소년이었던 정화(12세)는 붙잡혀 거세된 뒤 환관이 되어 당시 연왕(燕王)이었던 주체에게 헌상되었다. 주원장 사후 영락제가 제위를 찬탈한 정난의 변(靖難의 變) 때 정화는 공적을 세워, 영락제로부터 정(鄭) 씨란 성을 하사 받고 환관의 최고위직인 태감이 되었다. 정화는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남쪽 바다에 대한 대원정을 준비하여 1405년 6월 제1차 원정을 떠..

세계역사 2020.10.10

아프리카에도 문명화된 왕국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의 사하라의 이북에는 수많은 문명의 발자취가 스쳐간 역사가 있다. 북아프리카의 페니키아인들은 카르타고를 세웠고 메리니,하프스 오스만등 온갖 국가들이 세워졌다가 사라져갔으며 찬란한 문명을 구가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지역 특성상 유럽인들과 접촉이 유럽 각국이리 만큼이나 매우 잦았으며,이슬람의 문명을 받아들인 탓에 문화생활과 문명도 는 유럽인들보다 훨씬 앞서 있어서 풍요로운 지역으로 꼽히던 곳이 바로 사하라 이북 북아프리카이다. 하지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에 대해선 우리가 아는바가 매우 적다. 사하라이남 즉, 서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강대했던 왕국이자, 유럽인들이 동경하던 땅인 말리왕국이 있었다. 말리왕조는 12세기에 만딩고족이라 불리우던 햄족의 한 갈래가 세운 왕조이다. 만사무사완은 말리 ..

세계역사 2020.10.10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선도 바꾼 ‘여왕의 한마디'

아프리카의 지도를 보면 국경선이 이상할 만큼 직선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프리카 제국이 과거에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서 통치를 받았던 시대의 흔적이라고 해석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앞다투어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했던 각 나라는 기능적으로 영토를 분할하였는데, 이것이 직선적인 국경선이 탄생하게 된 원인이다. 그 결과 관계가 없는 부족이 한 나라에서 같이 생활하게 되었고, 반대로 같은 부족이면서 국경선으로 분단되는 사태가 발생하여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것이 후에 분리 독립 운동의 불씨가 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선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그어져 있으나 지도를 자세히 보면 한 곳에서만 국경선이 구부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국경이 생긴 데에는 숨겨..

세계역사 2020.10.10

유럽 제국주의의 아프리카 분할

현재 아프리카는 북부 아프리카에 이집트를 비롯하여 5개의 아랍국가와 사하라 남쪽으로 30여 개 이상의 국가가 있다.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 1만여명의 부족왕국들을 식민지화 과정후 독립된 아프리카는, 아직까지도 부족간의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주요 원인은 유목 지대의 초지와 식수,종교등의 갈등이지만 부족간의 분쟁이 국경 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영토분할이 인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국경이 민족 및 부족분포와 일치하지 않는 데다 부족사회 구조가 뿌리깊이 남아 있다. 왜 그럴까? 19세기 후반 리빙스턴이나 스탠리의 탐험 성과는 벨기에의 식민지 획득을 돕는 결과가 되었다. 영국,프랑스에 이어 뒤늦게 아프리카 분할 경쟁에 참가한 독일은 벨기에와 손을 잡고 식민지 점령의 실적을 올리면서, 1884년 말부터 ..

세계역사 2020.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