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88

세계 최고 장수마을 훈자 왕국

훈자는 1891년 영국의 침략이 있기 전까지 거의 바깥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곳으로 카라코람 산맥 언저리에 조용히 자리 잡은 작은 왕국이었다. 파키스탄이 1947년 8월 15일 독립하였을 당시, 파키스탄에는 13개의 토후국이 있었다. 다만,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에는 토후국이 없었고, 13개의 토후국은 모두 서파키스탄에 있었다. 훈자 지역은 각기 독립된 여러 왕국들로 구성되었는데, 1974년 파키스탄에 병합되기 전까지도 계속해서 왕국으로 남아 있었다.이슬람의 한 분파인 이스마리파를 믿고 있다. 훈자 마을에 가면 가장 관심을 갖게되는 것은 아마 이곳 사람들일 것이다. 생김새가 파키스탄의 원주민과 다르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BC 325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때 잔류한 3명의 군사와 그들의..

세계역사 2020.10.21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부족 통치지역

와지리스탄(Waziristan, 와지르족의 땅)은 아프가니스탄의 국경과 접하는 파키스탄의 서북부지역으로 총면적 11,585km²에 달하는 영토이다. 이 지역은 아프가니스탄의 접경에 위치한 파키스탄 연방자치부족구역(Federally Administered Tribal Areas)의 4개 주중 하나이다. 이 지역은 1893년까지 독립된 부족 지역으로 남아 영국령 인도 제국의 통치를 받지 않았다. 영국령 영토에 대한 부족차원의 지속적인 습격이 있어왔고,1860년부터 1945년까지 빈번히 영국 토벌대의 침략을 받아왔다. 이 지역은 1947년 파키스탄의 일부가 된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 와지리스탄은 북 와지리스탄과 남 와지리스탄의 2개의 주(agency)로 나뉘어 있는데, 두 지역의 총인구는 각각 361,246명..

세계역사 2020.10.21

네덜란드 독립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년 ?1648년)은 네덜란드 저지대 지방의 네덜란드 17주가 에스파냐(합스부르크 에스파냐)에 대항하여 벌인 독립전쟁을 말한다. 80년 전쟁, 네덜란드 반란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쟁의 시작과 함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공화국을 수립하여 에스파냐로부터 사실상 독립하였으며, 1648년 법적으로 독립의 승인이 이루어졌다. 전쟁기간 중 남부 네덜란드(현재의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프랑스의 노르파드칼레)는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남게 되었다. 이 지역은 네덜란드 공화국과 동맹을 맺고 리슐리외와 루이 14세의 지원을 받아 1630년대까지 계속하여 합스부르크 왕가와 대항하였다. 1648년 전쟁이 종결된 후 남부 네덜란드의 상당 부분이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세계역사 2020.10.21

영국은 어떻게 강국이 되었을까?

16세기말까지 영국의 위상은 별볼일 없었다.약소국은 아니지만 스페인이나 오스만에 비할수도 없는 2등국가에 지나지 않았다. 스페인이나 오스만은 차지하더라도 100년 전쟁을 치뤘던 프랑스에 비해도 잉글랜드는 초라했다. 이 당시에 잉글랜드의 인구는 300만 내외였으나 프랑스의 인구는 1,500만에 달하였다.한때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의 절반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16세기에는 프랑스의 일부 해안을 제외하고 변변한 해외영토가 없었다. 아울러 영토도 브리튼섬 전체가 아니라 잉글랜드와 웨일즈만 보유하고 스코틀랜드는 독립된 왕국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스페인과 잉글랜드의 국력차이는 양국의 정부예산만 보아도 차이가 나는데 엘지자베스1세(1533~1603)여왕 재위말 잉글랜드 왕실의 재정 수입은 88,700 pound..

세계역사 2020.10.21

전체인구가 반으로 줄어든 대재앙(아일랜드 대기근)

아일랜드 대기근(영어: The Great Hunger, )은 1847년에 발생해 800여만 명의 아일랜드 인구 중 200여만 명이 사망하고 200여만 명이 해외로 이주하여 아일랜드의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한 사건이다.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 영국의 부분 식민지였고,17세기 들어서는 그 영역이 더욱 확대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식민 정책이 시행되었고,그 결과 농업 지주들이 등장한다. 영국의 인구 팽창으로 농산물 수입이 늘고, 아일랜드의 농업을 발전하지만, 영국의 섬유산업 발달로 아일랜드의 목화, 가내 수공업이 도산하게 되자,이들을 식량으로서 감자 재배를 늘리게 된다. 이때 감자의 퇴화방지와 초기 질병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씨감자를 미국에서 들여왔습니다.이 경로를 통해 감자 마름병이 아일랜드에 급속히 퍼졌다. ..

세계역사 2020.10.21

비(非)신사적인 나라 영국!!!

영국은 프랜시스 드레이크라는 악명높은 해적이 여기저기 해적질을 해서 국가기반을 다진 나라로 매우 유명하다. 이들의 취미는 노략질이며, 특기는 대학살이라고 한다. 1570년 이후부터 드레이크는 서인도 제도의 에스파냐 선박이나 식민지 마을을 습격하는 등의 해적 활동을 시작했다. 1573년에는 파나마에서부터 금ㆍ은을 운송하던 에스파냐 선박들을 습격해 막대한 재보를 손에 넣었다. 프리마스 항을 출항, 대서양에서 마젤란 해협을 거쳐 태평양까지 진출해, 칠레나 페루 연안의 에스파냐 식민지나 배를 덮쳐 다시 한 번 막대한 재보를 약탈했다. 그 후, 태평양을 가로질러 모루카 제도, 나아가 인도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영국으로 귀국함으로써 페르디난도 마젤란에 이은 두 번째의 세계일주를 달성했다. 그는 이 보물들을영국 여왕 ..

세계역사 2020.10.21

이븐 사우드

사우드가(家)는 1780~1880년 아라비아의 많은 지역들을 통치했다. 그러나 이븐 사우드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그의 가족은 경쟁자들인 라시드가에게 추방당하여 쿠웨이트에서 돈 한푼 없는 망명객이 되었다. 1901년 21세의 이븐 사우드는 40명의 낙타부대를 이끌고 대담하게 자기 가문의 옛 영지를 탈환하기 위해 쿠웨이트를 출발했다. 가문의 옛 수도 리야드에 도착한 그들은 야음을 틈타 시내로 몰래 잠입했다(1902. 1). 라시드가의 총독은 성채에서 잠을 자지만, 매일 아침 날이 밝으면 그곳에서 나왔다. 이븐 사우드는 총독이 나타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다 부하들과 함께 달려들어 그를 죽이고 성채를 점령했다. 이러한 수훈은 그의 옛 왕조의 지지자들을 분기시켜 그들은 이같이 매력적인 지도자 밑으로 다시 모여..

세계역사 2020.10.21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나라를 빼앗긴 요르단

정식 국명은 요르단 하심 왕국. 영어로는 'Jordan'이라 하며 아랍어 표기로는 알-우르둔이라고 한다. 같은 이름의 요르단 강으로부터 국호를 따 왔다. 하심 가문은 과거에는 헤자즈 왕국, 시리아 아랍 왕국, 이라크 왕국의 왕가이기도 하였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가문명의 유래는 무함마드의 증조부의 이름인 '하심'. 다만 무함마드의 증조부 씨족인 '하심 씨족과 현대에 일컬어지는 하심 가문은 서로 다르다. 하심 씨족은 하심의 자손들 전반을 포함하지만, 하심 가문은 메카 아미르 작위를 세습하였던 무함마드의 혈통만을, 더 좁게는 아랍 반란을 일으켰던 후세인 빈 알리의 후손들만으로 한정된다. 하심가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직계 또는 방계의 아랍인 후손들로 이들 중의 한 가문이 20세기의..

세계역사 2020.10.21

◈제국의 전술

▣알렉산더의 전술 밀집 장창보병대 는 고대 그리스 시민군의 전형적인 부대 형태 또는 그러한 부대를 운용하는 전술을 말한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방 원정 때에도 이 전술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시민들은 직접 무장을 준비하여 유사시 중장보병(hoplites)으로 참전했다. 즉, 그리스의 보병은 훈련받은 우수한 병사라기보다는 무장을 갖춘 시민들의 집단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무용이나 현재와 같은 전술적 움직임 대신,시민단 전체의 유기적인 연결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이스식 투구, 흉갑, 정강이받이를 장비하고 왼팔에 묶은 대형의 원형 방패(hoplon)로 내 몸일부와 왼쪽 병사의 몸 일부 를 가려주는 형태로 바짝 다가서붙은 밀집진(phalanx)을 형성하며,드러난 양..

세계역사 2020.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