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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루나찰프라데시

아루나찰프라데시는 중국과 인도의 영토 분쟁의 초점의 기점인 지역으로 인도는 아루나찰 프하나의 주로 간주하는 중이다.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의 면적은 8만 3743km²로 남한보다 약간 작다. 이 지역은 원래 인도와 티베트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지역이었다. 남으로는 아삼 및 나갈랜드주와 닿아 있고 동으로는 미얀마, 서로는 부탄, 북으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여명이 빛나는 신의 땅’이라는 의미답게 인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밝아오는 지역이다. 식물학자들의 낙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히말라야 난을 비롯한 각종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인도계, 티베트계, 중국계, 미얀마계를 비롯한 여러 부족이 뒤섞여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1962년 10월 20일 중국 인민해방..

지리/전쟁 2023.10.20

시아파 벨트

시아파 벨트 또는 초승달 벨트라 부른다. 중동의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슬람 시아파 국가의 동맹 전선을 말한다. 현재 이슬람교는 수니파가 전체의 90%로 다수파고, 시아파는 소수다. 이란을 필두로 시아파는 동맹을 맺어 수니파와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시아파는 수니파 다음으로 가장 큰 종파라지만 신도 숫자로 따지면 확실히 소수 종파이다.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대략 3억 4천만 명 정도로, 전 세계 무슬림의 17%를 차지한다. 인도-동남아 쪽 무슬림들이 거의 전부가 수니파이며 이들이 세계적인 인구 대국들이라서 퍼센트로만 보면 시아파가 매우 소수종파로 보인다. 수니파와 달리 개인의 이성과 유추를 통한 깨달음을 중시한다. 무함마드의 혈연을 종정으로 삼다보니 지역색이 수니파보다 옅은 탓인지..

종교 2023.10.16

지중해의 분단국가 ‘키프로스 ,

아크로티리 데켈리아는 서아시아 지중해 동부에 있는 키프로스 섬(키프로스 공화국 소속이 아닌 일부 지역)에 있는 영국의 해외 영토다. 1960년 키프로스가 영국에서 독립하기 직전, 런던 취리히 협정에 따라 창설되었다. 키프로스는 독립했지만 영국의 군사 기지였던 이 곳은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게 되었다. 영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지역이지만, 키프로스 독립 당시 영국과 키프로스의 합의에 따라서 해당 육상 영토의 근해 지역은 군사적으로 통제가 필요한 지역 이외에는 영국의 영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와 함께, 국경선에도 세관이나 검문소를 세우지 않아서 키프로스 국민들은 자유롭게 지역을 넘나드는것이 가능하다. 아크로티리는 서부 주권 기지 지역(Western Sovereign Base Area), 혹은 줄여서 WSBA라..

민족분쟁 2023.10.12

이탈리아 제국주의

1936년부터 1941년까지이탈리아 식민 제국은 19 세기에 아프리카 에서 설립 되었으며 왕국 의 식민지 , 보호령 , 조계지 및 종속국 으로 구성되었다. 이탈리아 . 아프리카 의 식민제국 에는 현재의 리비아 , 에리트레아 , 소말리아 , 에티오피아 영토가 포함된다. 아프리카 외부에서 이탈리아는 도데카네스 제도 ( 이탈로-투르크 전쟁 이후 ), 알바니아( 1917~1920 및 1939~1943 )를 소유했으며 텐진을 포함하여 중국에서 일부 양보를 받았다 . 1922년 이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의 지도 하에 정권을 잡은 파시스트 정부는 이탈리아 제국의 규모를 늘리고 체계적인 " 인구학적 식민지화 "를 장려했으며 1939년까지 이탈리아 정착민의 수는 이탈리아 리비아에서 120,000-150,000, 이탈..

세계역사 2023.10.05

나흐츠반 자치 공화국

나히체반 자치 공화국은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를 구성하는 자치 공화국으로써, 아르메니아에 의해 국토 일부가아제르바이잔과 떨어져 월경지가 된 곳으로 아제르바이잔의 자치 공화국이다. 면적은 5,500㎢, 인구는 2020년 기준 461,530명이다. 국토가 이렇게 된 것은 역시 구 소련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면서 이곳도 아제리인이 다수이기 때문에 편입되었다가 구소련 붕괴 후 자연스럽게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된 것이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나히체반)은 한일 버금가는 이웃이 원수인 국가인데, 이렇듯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언어, 생활양식 등 모든 것이 다른데다가 역사적 분쟁들도 있어서 조지아 못지않은 화약고라 할 수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아르차흐 공화..

민족분쟁 2023.10.03

카라칼파크스탄

카라칼파크스탄은 카라칼파크족이 사는 지역으로 우즈베키스탄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카라칼파크족은 주류인 우즈베크족과 다른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이다. 대부분의 인구가 아무다리야 강 의 물을 관개수로 댄 중부 지역에 몰려있다. 수도는 누쿠스이다.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의 면적은 166,590㎢이고 인구는 약 200만 명이다. 몽골족과 혼혈되었고, 튀르크어를 사용한다. 이들의 민족명 '카라칼팍'은 "검은 모자"를 의미하며, 카자흐에서 갈라져나온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언어 및 문화적으로 카자흐스탄과 가까운 편에 속한다. 킵차크족의 후예들 1) 카자흐: 16,000,000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 카자흐스탄의 주류민족이자 현대 킵차크족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며, 이웃한 중국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

나라 2023.10.02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사크인

우크라이나인이란 동슬라브계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슬라브 민족을 말한다. 혈통상으로는 동슬라브족에 속하고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루신인과 매우 가깝다. 우크라이나라는 말은 근세에 생긴 어휘이며, 중세에는 루테니아인(Ruthenians)이라는 말로 더 자주 칭해졌다. 슬라브인, 그리고 동슬라브들의 기원 지역이 우크라이나 현 영토와 상당히 겹치며 우크라이나인들은 슬라브족과 기원전부터 이곳에 정착해서 살던 선주민족인 스키타이, 사르마티아, 알란인 등 이란계-투르크계 유목민족들이랑 결합하면서 형성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고 우크라이나 코사크들은 러시아군의 정예 경보병이나 기병으로 복무하며 시베리아 진출과 캅카스, 중앙아시아 정복에 공헌하였다. 캅카스와 시베리..

세계역사 2023.09.08

또 하나의 몽골 '오이라트 4부 연맹'

오이라트 4부 연맹 또는 두르벤 오이라트는 몽골 서부 알타이 산맥 인근에 위치했던 초로스, 도르베트, 토르구트, 호쇼트 부족의 연맹체를 말한다.오이라트는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했을 시절 서북쪽 끝자락에 살던 산림 부족들이다. 오이라트는 1207년 칭기스 칸의 몽골 제국에 복종하였다. 오이라트는 몽골에 편입되었지만 케레이트, 나이만 등의 잔존 세력을 흡수하였다. 1368년 원나라가 망하고 난 뒤 원의 고위 관리였던 몽케테무르는 스스로 오이라트의 수장을 자칭하였다. 몽케테무르가 죽고 나자 마흐무드, 타이핑, 바투볼라드 세 명의 족장이 오이라트를 다스렸다. 그들은 명나라에 공물을 보내며 신속하였고, 명나라 영락제는 1409년 그들에게 왕의 작위를 수여했다. 1388년 북원 내부의 혼란을 틈타 몽골 고원 서방..

카테고리 없음 2022.06.29

세계 최초 세계대전'7년 전쟁'

30년 전쟁이 끝나고, 신성 로마 제국은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300여 개의 영방 국가(13세기 봉건 제후들이 세운 지방 국가)와 자치 도시의 연합체로 분열되었다. 오스트리아 왕국(합스부르크 왕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브란덴부르크 대공국(독일 북동부), 바이에른 왕국(독일 남동부), 쾰른 대주교령, 작센 공국(독일 중동부) 등은 비록 통일된 왕국은 아니었지만, 독립된 주권을 가진 국가로 나름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오스트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국가로 떠오른 프로이센(브란덴부르크 대공국)으로 인해 유럽은 다시 한 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발트 해(덴마크 남부에서 북쪽으로 북극권까지 뻗어 있는 바다)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프로이센은 원래 프로이센 토착민들이 살던 지역으..

카테고리 없음 2022.06.17

그레나다

그레나다는 중앙아메리카 동 카리브해 소앤틸리스 제도(Lesser Antilles)에 속하는 작은 세 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로, 수도는 세인트조지스(St. George's)이다. 국토면적 340㎢, 인구 약 10만 명의 미니 국가이다. 1인당 명목 GDP는 $8,971이다. 면적만 따진다면 강화군이나 몰타와 같은 크기이고, 인구 역시 나주시와 비슷하다.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은 콜롬버스가 콘셉시온이라고 명명했으나 하필이면 동료였던 포르투갈/스페인 항해사 및 선원들이 스페인의 도시이름이기도 한 그라나다라는 이름으로 고쳐불러 이 이름이 정착되었다. 18세기말에 영국과 프랑스는 그레나다를 두고 그레나다 해전을 치른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에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

나라 2022.05.31